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예전에 읽었던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포스팅을 올렸었는데
이번엔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의
줄거리, 인상 깊었던 구절 등 후기를 올려본다.
소설 후기
무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질척하게 감싸던 오늘,
나는 그동안 읽기를 미뤄왔던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이미 <채식주의자>를 통해
한강 작가의 필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꼭 읽고 싶었었는데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주저 없이 별 다섯 개의 평점을 주었다.
그만큼 작품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은,
그것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다는 것은
작가로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책 속의 '소년'인 동호의 친형이 취재를 허락하며
한강 작가에게 '잘 써달라'고 했던 부탁은
심적으로도 무지 부담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의 섬세하고도 리얼한 묘사력과
팩트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되면
독자에게 엄청난 임팩트와
공감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감이 느껴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한편, 책 속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기까지 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적 상상력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아마도 분명한 것은
작가가 철저한 고증 후에 작품을 썼을 테고
적어도 과장 없이 썼을 거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다지도 잔인무도하고 끔찍한 진실을
지금껏 왜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마저도 밀려왔다.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봐왔지만
<소년이 온다>만큼
사실적으로 와닿은 작품은 없었던 듯하다.
사실 그동안 나는 막연하나마
우리의 아프고도 슬픈 현대사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터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서
몰랐던 진실과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
5·18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시거나 겪으신 분들에 대해
새삼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또, 책을 읽으면서 분노와 의구심이 들기도 했는데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렇게도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어야만 했나?
필요이상으로 특별하게 잔인성을 드러낸 계엄군들은
과연 인간인가 괴물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에 따르면 군중의 도덕성은
개개인의 도덕성과는 무관하며
한 개인이 특별하게 야만한게 아니라
인간이 본래 가진 야만성이
군중의 힘을 빌려 나온 거라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쉽게 수긍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서슬 퍼랬던 군사독재시대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꼈다.
앞서 나는 <소년이 온다>에 높은 평점을 주었다.
한강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과 묘사력뿐만 아니라
구성면에 있어서도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줄거리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 있는데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인물 또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이 사건에 대해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1장 어린 새
시신 수습을 돕는 소년 동호를 통해 처참했던 현장을
2장 검은 숨
주검이 된 소년 동호를 통해 무자비한 계엄군의 만행을
3장 일곱 개의 뺨
출판사 직원 김은숙을 통해 엄격했던 사전검열을
4장 쇠와 피
교대 복학생을 통해 끔찍했던 고문과정을
5장 밤의 눈동자
임선주를 통해 노동운동을
6장 꽃 핀 쪽으로
동호의 어머니를 통해 아들 잃은 슬픔을 보여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장치인지
이 소설은 다인칭 시점을 쓰고 있어서
객관적으로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각 장마다 인물들의 절절한 심리묘사 덕분에
지루함을 모르고 완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강 작가는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어떻게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렇게 깊이 공감 가도록 쓸 수 있는지
작가의 내공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소설이란 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잠시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며 함께 공감하는 것,
그 매력 때문에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 글은 에필로그에 실려있는 건데
5·18에 대해 '방사능 피폭'에 비유한 것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5·18과 비슷한 일들이 형태를 달리해
현재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는데
묵직한 여운이 남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말하자면,
한강 작가가 들려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혼곡
이랄까...
무조건 강추!!! 다.
인상 깊었던 구절
한 번에 수천 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 같은 폭약소리. 먼 비명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어두운 창문으로 축축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다. 무엇인가가 길게 내쉬는 숨 같다고 문득 당신은 생각한다. 거대한 생물 같은 밤이 입을 열고 습기 찬 날숨을 뱉어낸다. 사무실 가득 밀폐돼 있던 뜨거운 공기를 캄캄한 허파 속으로 빨아들인다.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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