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책들
김연수, 김중혁의 대꾸 에세이 <대책없이 해피엔딩> 후기
monozuki
2024. 11. 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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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대꾸 에세이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었다.
대꾸 에세이라는 서브타이틀처럼
김천 출신의 두 작가가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주고받는 형식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써놓은 책이다.
소설과 달리 각자의 소소한 일상
또는 추억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어 흥미로왔다.
김중혁작가에 대해선 잘 몰랐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가 어떤 캐릭터의 인물인지,
어떤 생각을 지닌 작가인지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고,
김중혁식 유머가 은근히 맘에 들었다.
(이에 힘입어 그의 <펭귄뉴스>를 빌려보았지만
도중하차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게다. -_-)
김연수 작가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현학적인 글이 때때로 당황스럽긴 했다.^^;
이 책은 엄마와 관련된 글이 실려서
더욱 뜻깊은 책이라 하겠다.
책속으로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
이 자체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고통스러웠거나 민망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지워버린다.
기억이 희미하면, 상처를 받아도 쉽게 잊는다.
상처를 쉽게 잊으니
상처를 받는 일도 점점 드물어진다.
사람으로선 놀라운 강점이지만
작가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난 예술에서 진정성이란
곧 웰메이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워낭소리) 역시 잘 만들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생겼다.
내가 천재를 시샘하지 않게 된 것은
작가 역시 기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일종의 기술자라서
평생 자신의 기술을 반복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연습하여 스스로를 완성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일찍 인정받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끈질기게 자신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느냐다.
기술을 닦으면서 연습하는 동안
얼마나 행복한가이다.
서른다섯 살이 지난 뒤에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로 우리가 왜 죽음과도 같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지 아는가?
그건 스스로 무덤을 팠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린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일까?
그게 다 혼자 중얼거려서다.
인생의 막장에 이르렀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도 없이 거기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한심한 일이 있을까?
그러니 인생은 더 꼬이게 돼 있는 것이다.
희망이란 게, 참, 그렇다.
희망은 거대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일 수 있고,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희망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 있다.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노예들이 벽돌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바벨탑의 길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한 바퀴 돌고 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는
조금 더 위쪽에 있게 되는 그런 길말이다.
연수 군은
'한 바퀴 돌고 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는
조금 더 위쪽에 있게 되는 그런 길'
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예전보다 조금 넓어진 곳'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우리의 삶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다.
같은 자리를 맴돌긴 하지만
그 자리는 조금씩 넓어진다.
많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큰 원을 그릴 것이다.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은
더 적고 촘촘한 원을 그릴 것이다.
어떤 게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노자의 말 중에
'거거거중지 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 行行行裏覺'
이라는 게 있다.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하고 하고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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