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비(雨)일비(雨)재 / 비오는. 월요일. 만원. 전철

monozuki 2024. 11. 13. 09:08
반응형

비(雨)일비(雨)재

비일비재
비일비재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면 

가는 비, 굵은 비, 투명한 비, 황사비 등이 있겠다. 

분무기처럼 흩뿌려지는 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장대비는 

대나무가 하늘에서 툭툭 떨어져 지상에 꽂히듯 

기세등등하고 호기롭다.
시각장애인에게 지금 내리는 비에 대해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조금 난감해진다. 

직선으로 내리꽂는 비, 사선으로 선을 긋듯 내리는 비, 

지그재그로 내리는 비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할 때 

마른땅에 둥근 얼룩이 생기는 모습을 볼 때면 

하느님이 찍찍 침을 뱉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비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막강한 지우개.

후두둑으로 시작해서 쏴아~로 이어지는 비. 

빗방울이 지면과 만날 때 

또는 자연, 건물, 사람, 동물등 

여러 가지와 접했을 때 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내는 

촤르르~ 소리다. 

비가 우울감과 가라앉음을 유발한다면 

이 소리만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쾌함과 발랄함을 전해준다.

 

투명한 비는 친환경적, 친낭만적이다.
투명성을 잃은 비는 공해의 시작일테다.

 

처마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는 

낭만적이다. 

 

소나기가 전해주는 소리는 

호탕하고 우렁차서 뒤끝이 없다. 

그에 반해 부슬비는 

소리 없는 도둑처럼 다가선다.
비는 큰소리를 내며 

주위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다.
비는 존재감을 소리로 얘기한다.

비에도 냄새라는 게 있다. 

굳이 따지자면 막 내리기 시작하는 비,

한창 내리고 있는 비, 

그칠 무렵의 비의 냄새는 다른 듯하다. 

메마른 땅과 물기가 만나 일으키는 

특유의 비릿한 비비린내라고 해야 되나.
한창 내리고 있는 비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서 

축축한 젖은 내 같고 

그칠 무렵의 비는 

습기가 증발해 가면서 나는 또 다른 비린내가 있다.

 

비 오는 날 최악의 냄새는 

곰팡이 또는 땀과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꼬랑내라고 해야 될까.
비 오는 날 최고의 냄새는 커피 향이 아닐까. 

멜랑꼴리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비요일, 

커피 향은 너무나 치명적이고 고혹적이다.
비는 대체로 불쾌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순수한 비냄새는 좋지만

불순물이 섞이면 고유함을 잃게 마련이다.

비맛을 본 적이 있던가. 

어릴 적 맛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에 없다. 

간접적으로 빗대어 얘기하자면 

비 오는 날 먹는 술, 커피, 담배는 다 맛나다는 사실이다. 

비가 주는 직접적인 맛보다는 

비가 잠든 미각을 일깨워 맛을 달리하게 만든달까. 

비는 도 아니면 모이다. 

장사가 잘되는 식당이 있거나 파리 날리는 식당이 있거나.
비는 맛이 없지만 비 오는 날 먹는 건 다 맛있다.

뜨거운 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로 비는 차갑다. 차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날씨와 상대적이다. 

더운 여름의 비는 따뜻하게 느껴지고 

추운 겨울의 비는 더욱 차게 느껴진다.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살갗에 닿는 비가 아니어도 

마음을 차갑게 하는 비, 

이를테면 수해를 불러일으키는 폭우,

 태풍을 동반한 호우 등은 

누군가의 마음을 차갑게 할 것이다.
가물었을 때 내리는 비는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비는 마음의 살갗과 가장 맞닿아있어서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에
-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여자와 비를 싫어하는 남자의 만남.
- 우산장수인 아들과 선글라스 가게 하는 딸을 둔 부모의 마음.
- 빗소리 감별사가 있다면? 빗소리, 비냄새, 비촉감 등을 통해
앞으로의 날씨를 예언하는 사람의 이야기.
- 비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비를 모아서 얼려서 얼음으로 만든 후 얼음송곳을 만든다.
비를 데워서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 무기로 사용한다.

 

 

 

 

 

 


비 오는. 월요일. 만원. 전철

비오는 날 전철
비오는 날 전철

 

직장인의 출퇴근을 얘기할 때 

가장 싫은 요일은 월요일일 것이다. 

더욱 싫은 것은 비 오는 월요일이고
비 오는 월요일, 전철을 타는 것은 

더더욱 싫은 일일 텐데 

전철고장으로 만원 전철을 타는 일은 

최악에 가깝다. 

그런 날이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그는 오늘 하루가 녹록지 않음을 

집 밖을 나서기 전부터 예감했다.
아침거리로 곧잘 먹는 낫또에 얹어먹기 위해 

달걀 속 노른자를 가려내다가 

그만 노른자를 배수구로 떠나보냈다. 

그건 그에게 징크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달걀프라이를 먹으려 프라이팬에 달걀을 풀었는데 

노른자가 터지는 경우가 그러했다.
달걀과 하루의 일진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걸 맹신했다.

이미 전철역 플랫폼은 긴 줄이 늘어서서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예정된 시간에 전철이 들어오나 했지만 

빈털터리로 통과하는 열차였다.
꽉 참과 텅 빔이 스크린도어 하나 사이를 두고 교차했다.
10여 분 만에 전철이 들어왔다.
예상은 했으나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발을 들이밀었고 

일단 타는데 성공은 했다.
하지만 미는 힘이 강할수록 밀어내는 힘도 강하듯
이미 타고 있는 이들의 저항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가방이 도어에 끼일지도 모르는 그런 빡빡함.
그는 어떻게든 붙어있으려 했으나 결국 튕겨져 나왔다.
그는 어쩌면 정말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버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달리해보면 전철에 타느냐 못 타느냐가 아니라 

영화 <국제시장>처럼 목숨을 걸고 피난하기 위해 

배에 올라야 할 때라면 어땠을까.
내가 살기 위해 자기를 옥죄어오는 불편함이 힘들다고 

남을 밀쳐낼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두 번째 전철이 왔다. 

이번에도 빡빡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탈 수 있는 한치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과 온몸을 밀착하고 

그 사람의 콧김, 입김, 체취까지도 

강제적으로 공유해야 하는
괴로움과 출근시간을 맞바꿔야 했다.
그는 오늘의 일진이 안 좋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가 처음에 타려고 했던 전철에서 

아주 타이밍이 안 좋게 튕겨져 나왔다면 

전철문이나 스크린도어에 끼었을 수도 있고 

전철과 역사이의 간격이 멀어서 

발 한쪽이 빠지는 불운을 겪게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