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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전경린의 소설 <황진이> 후기

by monozuki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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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황진이

저자: 전경린

출판사: 이룸(2004)

 

소설 황진이 전경린

이 책을 읽고

도서관에 새 책들이 들어옴으로써 내 독서삼매경에 불을 지폈다.

최근 전경린의 책을 읽어선지 장편소설 <황진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틀에 걸쳐 하루종일 읽고서야 책장을 덮을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조선시대 소설을 읽는다.

거의 현대소설이나 외국소설을 읽어왔던 내겐

옛스러운 말투와 배경들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소설 <목민심서>와 <동의보감>에 빠져 읽던 때가 언제였나?

그러고보니 옛 인물을 다룬 책은 실로 오랜만에 읽는거다.

 

소설 <황진이>는 황진이의 일생을 그렸는데

거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렴풋하게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운명을 일깨우게해준 수근과의 만남,

첫사랑을 알게되는 한유수와의 만남,

기생으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일편단심적 사랑을 이사종과 나눈다.

황진이에게 미모뿐만아니라 지성도 겸비하게 만드는 서경덕과의 만남,

거문고를 가르쳐주는 선생 등등.

 

 

이 책은 총 2권으로 이뤄졌는데

1권과 2권 중반까지 그녀의 출생에서부터 사랑 이야기가 주류를 이뤄

거의 로맨스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그녀가 사랑을 느끼며 쓴 시와 인용한 시가

적절히 섞여 로맨스소설적인 요소에 문학요소가 가미되었다.

작가 전경린이 얘기하고픈, 표현하고픈 황진이는

한사람만을 사랑할수없는 운명을 인식하고

거기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황진이,

결국 그 운명을 받아들이게되는 황진이의 내면적 모습을 그린것같다.

또, 그녀의 당찬 성격과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각,

당시 그 시대의 여자들을 옭아매는 각종 제도에 항거하는 

다분히 페미니스트적인 황진이를 그려냈다.

엄밀히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라기보다 그야말로 자유인의 삶을 살고픈

황진이를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계약동거'란 파격적 형식으로 황진이의 삶을 그린 것도

전경린 작가다웠다.

<열정의 습관>에서 보여준 섬세하고도 야릇한 성묘사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전경린은 황진이 뿐만아니라 동생 난의 기구한 운명까지도 해방시키려 노력했고

몸종 연두에겐 '속도위반'을 다룸으로써 전통적인 역사소설의 형식(틀)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보여주었다.

 

후일 수근이 등신불이 되려고 할때도 황진이는 적극적이고도 대담하게

그를 세속으로 끌어들이려한 시도도 파격적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건 현대를 사는 인물이 아닌

역사 인물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려내어

우리에게 황진이의 삶을 보여준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물론 그녀뿐만아니라 대하소설을 써온 조정래, 박경리 같은 작가에 대한

경외심도 새삼 느끼게 했다.

소설속에 나오는 한시들을 어렵지않게 감상할수있도록

상황에 맞게 적절히 믹서시켜 한시에 대한 친근감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인상깊은 구절과 나의 코멘트

누가 알겠느냐, 지금 막 떨어지는 저 낙차의 고통을.
그러나 떨어져 시퍼렇게 부서진 물은 잠시 쉬는 듯하다.
주저없이 아래로 흐르는구나.

 

☞ 박연폭포에 대한 황진이의 말인데

자신의 운명의 숙명성을 묘사하는듯한

의미심장한 얘기이면서도

단순히 폭포의 성질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모든 고통은 한계가 있어 그 너머에 진실이 있으니
느낄수 없을때까지 느끼십시오.
그것이 고통과 진정으로 관계하는 법입니다.

 

진도노파가 황진이에게 하는 얘기인데

황진이뿐만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새겨볼만한 문구이다.

'고진감래'라...

 

몸안에 고인 얼음호수는
어느 사이 익숙해진 생의 조건이 되었다.

 

☞ 천하의 사랑을 받게되는 운명을 지닌

황진이의 절대적 고독을 묘사한 부분같다.

누구에게도 다가갈수없는 기생의 운명을 나타내기도 하는듯.

 

저마다 일에는 목숨 걸어야하는 구석이 다 있는 법이니.
너는 목숨을 걸고 마음을 한곳에 매이지말아.

 

☞ 옥섬이 기생의 운명을 살아야하는

황진이에게 하는 삶의 철학적 충고 

 

몸을 맺었는데, 어찌 정인들 들지 않을까요?
정이 들지 않는데 어찌 자꾸만 몸을 맺을까요?
상처를 입지 않으려하면 마음을 더럽히게 될 것이고,
마음을 더럽히려 하지않으면 어김없이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어찌 마음없이 몸을 받아들이란 말예요.
어찌 몸을 받아들이고도 마음을 차게만 가지란 말인가요.
더운 마음을 어찌 홀로 버리고 또 버리란 말이에요.

 

☞ 사랑하는 마음을 어쩌지못하는 죽선기생에게 황진이가 하는 얘기.

사랑과 이별의 고통에 적당히 초연하고

그리고 기생이 기생으로 살아가기위한 방법을 

황진이가 들려준다.

그간 황진이의 갈등하는 마음을 엿보게도 한다.

한사람만을 섬길수없는 기생의 운명을 잘 묘사했다.

1권내내 이 얘기를 하기위해 여러길을 둘러왔다는 느낌!

황진이의 인간적 고뇌가 확연히 드러나다.

 

공자께서는 사무사(思無邪)라고도 하였습니다.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음.
그것이 시라고 하였지요.

 

옳거니! 수긍케하는 대목.

'시'란 그런거구나.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않든
오직 시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포부를 펼치며
시를 쓰지 않을수없는, 억제할수없는 충동을 가진 자이다.

 

과연 난 시란걸 쓸수있을까 하는 의문에 시원하게 답을 주는 대목이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이곳이 어딘지 난 도무지 모르겠소.
도무지 모르니 한번 어긋나면 다시는 못 찾아올것만 같소.

 

☞ 이사종이 황진이에게 보낸 편지대목.

참 멋있는 사랑표현이라 인상에 남는다.

 

진은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남자 스스로 보아 느끼는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보다 강력한 남자의 인정과 몇 남자가 퍼뜨리는 소문으로 인해
아름다움은 부풀어오르고
한번 과장된 아름다움은 신비한 공신력을 얻어
검증될 필요도 없이 고스란히 수용되는 것이었다.
진은 미의 정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극대화시킬줄도 알았다. 

 

☞ 오호라~ TV도 없던 시대에 풍문으로나 미모에 대해 알수있었던

조선시대의 PR법이로구나. 

 

진은 매번 삶의 잔인성에 놀라고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운명의 길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한 발자국도 놓치지않고 충실하게 밟아 운명과 일체가 되어야했다.
그 자신이 바로 운명 자체가 되는 일생,
그것만이 자기구원이었다.

 

☞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나 그 운명안에서 삶을 개척하려는 황진이는

진정 멋있는 여인네였다.

 

사람이 늙으면 상식에 어긋나는 세가지 일이 생긴다했지.
하나는 곡을 할때 눈물이 나지않고 웃으면 눈물이 나는 것이요.
둘째는 밤에는 잠이 없고, 낮잠을 많이 자는 것이요.
셋째는 어릴때 일은 잊지않고
중년의 일, 최근의 일을 망각하는 것이라 했지.

 

☞ 음...늙어간다는게 이런거구나!

이런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늙었다는 증거겠구나.

 

나는 이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별이 없어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그리고 나역시도
세상과 인생의 속성을 벗어날수 없으니 말이에요.
세상과 인생의 속성을 못 이기는데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나는 오히려 좋은 사람에게 지쳤어요.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가 짊어진 생로병사와 애오욕의 긴 그림자로
상처를 입히니말이에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나쁜 점과 이상한 점과 좋은 점을
따로 가진 법이지요.
이생은 그걸 드러내고 사는 사람일뿐이에요.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그때그때 자르며 지나가지요.

 

☞ 수근의 죽음을 겪으며 세상사에 통달한듯한 황진이가

이생과 유랑을 떠나려는걸 막는 연두에게 하는 말.

이사종과의 이별 등 갖은 시련속에서 황진이가 깨달은

삶의 교훈같은 내용이다.

 

죽음이란 두가지지.
목숨을 잃는 것과 삶을 잃는 것.
삶을 잃고도 살아있는 유령들이 이 나라에 가득하다.

 

서화담이 황진이에게 이르는 얘기.

유랑을 떠나는 황진이에게 삶의 어떤 고통속에서도

진이 진의 길을 가길 바라는 의미에서 하는 얘기인데

정말 공감한다.

정신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에 대해 생각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인상깊은 대목들을 정리하며 그 의미를 새기니

이 소설이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책을 읽을땐 줄거리만 보이는 것 같더니

작가가 곳곳에 진주를 숨겨두고 있었던거다.

그 진주를 찾아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경린 작가는 김형경과 함께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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