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고래>는
지금까지 읽은 천명관의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이었다.
과연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으로 뽑힐 만큼
수작임을 읽고 나서야 납득했다.
아니 읽으면서 납득을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명관은 천상 이야기꾼이구나하고
확인사살시켜 주는 작품이랄까.
4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는 순간부터 손에서 놓기가
힘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필력이구나... 하는.
소설 후기
이 작품은 크게 노파, 금복과
그의 딸 춘희의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금복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도 참 재밌었지만
1급 청정수이자 반편이로 나오는
춘희의 삶 또한 기구하면서도 애잔했다.
특히 순수함과 나약함으로 대표되는
춘희라는 인물의 인간의 욕망과 잔인함에 의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사랑의 힘을 통해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잘 보여주어 인상적이었다.
또, 다양한 인물들이
너무나도 유기적으로 잘 엮여있고
그들에 의해 점점 이야기가
확장되는 힘 또한 굉장했다.
읽다 보면 잊혔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꼭 어디선가 나타나
이야기를 점점 풍부하게 만들고
제 할 도리를 하고 사라진다.
이야기를 이야기로서만 읽다가도
사족처럼 나오는 내레이션을 통해
우리에게 객관성을 부여하는 기법도 좋았다.
지극히 통속적이면서도 현실적인가 하면
춘희, 코끼리 점보 등을 통해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더불어 반전으로 드러나는
쌍둥이 자매에게서 밝혀지는 놀라운 비밀 또한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간접체험하며
작가의 인간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작가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이야기꾼의 자질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얘기한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인상 깊은 문구
"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
" 당연하지,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어있어."
"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
"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훅,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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