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 학교폭력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한 여인의 치밀하고도 처절한 복수를 그린 이야기다.
<비밀의 숲> 연출을 맡았던 안길호 PD와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 로코의 여왕 김은숙 작가가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 스포있음
총평
▶ 김은숙 작가의 찰진 대사빨은
이 드라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다만 가끔씩 대사를 위한 대사가
살짝 거슬리기도 했다.
▶ 이 작품은 상처있는 두사람(송혜교, 이도현)이
서로 복수를 도와주며 마음을 열어가고
구원해가는 이야기이면서
학폭 가해자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그렸다.
송혜교는 본인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않고
우정따위 1도 없는 전재준 4인방에게 따로 접근해서
서로 이간질시켜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수법을 썼다.
이런걸 1타 쌍피라고 하겠다.
▶ 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오던
김은숙 작가가 이번엔 약간의 변형을 줘서
'흑기사'식 복수극을 그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흙수저와 금수저의 만남엔 차이가 없는듯 하다.
▶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폭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가정폭력, 교내 성폭력, 직장내 괴롭힘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 시즌 1은 본격적인 복수를 위한 밑밥이었고
시즌 2부터 찐 복수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차분하고 고요한 복수다.
주여정(이도현)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강영천(이무생)이
이송된 지산교도소의 의무관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시즌 3의 예고이면서
주의사의 복수극 서막을 알리는 걸까?
캐릭터
송혜교
이 배우를 그닥 좋아하지않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인정하지않을수 없겠다.
서늘한 눈빛과
캄(calm)하고 차가운 느낌,
안정된 톤의 내레이션이
드라마에 집중하게 만든다.
깊은 상처를 입어 복수로만 가득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잊고
지내는 삶을 사는 여인의 모습이란 저런거겠지 싶었다.
무엇보다도 송혜교는 이도현, 임지연, 차주영, 김히어라 등과
한 씬에 갖다붙여놔도 그닥 이질감이 나지않을 정도로
최강 동안임에는 분명했다.
임지연
그녀는 영화 <럭키> <타짜><유체이탈자>에
출연한듯하나 잘 모르는 배우였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로 떡상한 배우가 임지연이 아닐까.
송혜교에 결코 밀리지않는 에너지와 연기력으로
갈등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단지, 악역 이미지가 단단히 심어져서
다른 작품에서 연기변신이 쉬울까?
하는 우려는 있다.
그저 다음 작품에서 멋진 변신을 보여줬음 좋겠다.
박연진의 아역을 맡은
신예은 또한 정말 얄밉게 연기를 잘한다.
이도현
문동은(송혜교)을 위해
칼춤추는 망나니를 자청하는
성형외과 의사 주여정의
이도현 배우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보는 배우다.
신인인가??
암튼 한석규처럼
안정되고 편안한 연기를 보여준다.
염혜란
김은숙 작가가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이미 캐스팅을 점찍어두고 대본을 쓴 캐릭터가
염혜란 배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연이긴 하지만
송혜교를 서포트하는 인물로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송혜교를 돕는 조력자일뿐만아니라
그녀는 문동은을 도와주면서 본인도 성장하는데
가정폭력피해자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은
암울한 과거에서 벗어나
원래의 명랑함을 되찾았다는 뜻이 아닐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상이다."
드라마에서 언급된 데미안의 명구절처럼
그녀는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 슬픔과 해방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 염혜란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다.
박지아
문동은 엄마역을 맡은 박지아 또한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처음 만나는 배우다.
하지만 연기 참 잘한다!
싼티 뿜뿜에 속물이면서
술에 쩔어있고 남성편력도 있는,
모성애라곤 전혀 느낄수없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정성일
박연진의 남편역을 맡았던 정성일은
안정된 목소리톤과 속을 알수없는 표정으로
시크하고 중후하고 이성적인
하도영 캐릭터를 자기것으로 잘 만들었다.
문동은과의 묘한 기류와
전재준과의 팽팽한 기싸움으로
극의 긴장감을 주었다.
박성훈
<더 글로리>에서 정말 요란하고 팔딱거리는
캐릭터 3인방을 꼽으라면
박연진, 문동은 엄마,
그리고 전재준(박성훈)일것이다.
세 인물 모두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번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뉴페이스(내가 보기에)가 많은데
심지어 연기도 잘해서 신선했다.
전재준 역할을 한 박성훈 또한 그러하다.
싸가지없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연기를
눈을 부라리면서 참 잘한다.
분명 재수없는 인간이지만
핏줄은 땡기는 법인건지
자신의 딸을 되찾기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김건우
전재준의 따까리 노릇을 하는
손명오역을 맡은 김건우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군더더기없고 자연스러운 연기에
능글맞음까지 장착해서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손명오가 몸에 새긴
메멘토모리(Memento Mori)가
결국 메모리(Me...Mori (나는 죽었다)) 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과 다름없었다는 발상은
신선했다.
이무생
드라마 <더 글로리>의
신스틸러 3인방을 꼽으라면
문동은 엄마의 박지아,
변태선생의 허동원,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이무생이라 하겠다.
그는 주여정의 아버지를 죽인
사형수로 나오는데
차분한 말투지만 살기어린 눈빛연기가
정말이지 섬뜩하게 만들었다.
만약 시즌3이 나온다면
그가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나올지
이에 주여정은 어떻게 복수를 펼칠지
자못 기대된다.
인상깊은 장면 & 설정
▷ 백합 가득한 방에 사람을 가둬놓으면
죽을수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천식환자에게 백합이 치명적이란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직접적인 살인은 아니지만
호흡곤란을 일으켜 살인을 방조할수있다는
아이디어가 신박하게 느껴졌다.
▷ 흔한 복수극에서처럼 남편에게 접근해서
가정을 파탄시키는 뻔한 수법을 쓰지않았던 것도 좋았다.
▷ 이 작품에서 빠뜨릴수없는
중요한 아이템은 바둑이다.
건축가가 꿈이었던 문동은에게는
건축도 바둑도
결국 '집을 짓는 일'이라고 한다.
문동은은 하도영, 주여정과
각기 바둑을 두는 신이 종종 나온다.
그들은 바둑판앞에 앉아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집을 짓는 것이었다.
바둑은 이들 두사람과 소통하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둘은 문동은의 공모자임을 뜻하리라.
▷ 드라마에 꼭 나오는 PPL이지만
주여정이 발포비타민제가 녹는 소리를
좋아한다는 설정을 만들어
PPL을 작품에 정말 잘 녹여냈다.
▷ 세상 잘난척하고 강한 척하는 전재준에게
색맹이라는 약점을 부여해
친자임이 밝혀지는데 활용한다든가
전재준의 부성애를 자극해
간접적으로 복수하는 설정도 좋았다.
▷ 박연진은 문동은의 약점인
속물 엄마를 이용해서
문동은에게 다시금 상처를 준다.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라면서...
이를 고스란히 돌려주듯
이번엔 문동은이 박연진에게도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엄마임을 깨닫게 만든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될수도 있지만
가장 큰 상처가 될수있음을
새삼 일깨워줘서 기억에 남는다.
▷ 이 드라마에도 반전은 있었다.
강렬한 한방은 아니지만
손명오를 죽인 진범이
김경란이었다는거.
박연진의 학폭 피해자중 한사람이었던
김경란의 한풀이도 하고
박연진의 억울함을 증폭시킬수있는
장치로 이용되어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아름답더라.
침묵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게 좋아서요.
상대가 공들여지은 집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것도 마음에 들고...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지않니?
내 세상이 온통 너라는게
내 세상이 온통 너인 이유로
앞으로 니 딸이 살아갈 세상은 온통 나겠지.
그 끔찍한 원망은 내가 감당할게.
복수의 댓가로.
관전포인트
이 작품에서는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대결구도가 여럿 나온다.
빅매치는 아무래도
문동은과 박연진의 대결이지만
그외 심장쫄깃하면서도
사이다처럼 통쾌한 마무리로 끝난
대결신이 있었다.
◐ 문동은 vs. 변태선생
직장에서 갑질하는 상사(선배)나
몰카찍는 성범죄자에 대한 응징을
작품에 담아 속시원했다.
특히 약자(여성)에게 비열하게 구는
찌질한 남성에게 말로 멕이는 장면은
뚫어뻥 그 자체였다.
◐ 하도영 vs. 전재준
낳은 정이 중요할까?
키운 정이 중요할까?
를 생각해보게 되는 대결이다.
늘 침착하고 냉정하던 하도영이
전재준에게 한방 날리는 장면도
시원했다.
◐ 강현남 vs. 박연진
같은 엄마의 입장으로서
남의 자식을 폄하하고
갑질하는 인간에게
불꽃싸다구를 날리는 장면은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 사형수 vs. 주여정
문동은과 박연진의 복수만 있는게 아니다.
여기 또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
살인을 저질러놓고도 평온한 사이코패스와
분노를 애써 누르며 괴로워하는 한 인간이
고요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아서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저 조마조마할 뿐이다.
그렇기에 시즌 3가 나왔음하는 바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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