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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책 후기 & 명대사

by monozuki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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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은 예전에 일본어 공부를 한창 할 때 처음으로 읽었었다. 그때 제목에서 일차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이차적으로 인간에게 실격을 논한다는 자체에 놀랐다. 그리고 한 인간의 두려움, 불안 등 내면심리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지금,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책후기

- 내가 느낀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취약하고

예술가적 감수성을 지닌 인물로 보여졌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게

그의 가장 큰 결핍이 아니었을까.

어릴 땐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고

평범한 척하느라 익살로

내면의 가면을 쓴 것은 아닌지.

 

- 요조는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일까.

아니면
믿었던 사람들한테 더 큰 상처를 받아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걸까.

아마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듯 하다.

- 인간실격이란 건

사회가, 세상이 정해주는 것으로
그들과 맞지 않으면 

실격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는지.

누군가 한 명이라도

요조에게 좋은 얘길 해줬더라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명대사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 심리학 용어에 '방어기제'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들 중에는 '유머'를 방어기제로 쓰기도 한다. 그들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머 뒤에 가려진 내면의 어둠...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 누구는 이런 주인공을 찌질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안의 두려움, 공포를 자각하고 인정한다는 게 어디 쉽나. 나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남이 준 것은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과도 맞닿아있어서 공감되었던 대목이다.

 

"부러 그랬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군가-그것도 자신과 친하지 않은 사람-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두려움을 익살로 바꿔 살아가던 주인공 요조의 속마음을 간파한 다케이치의 등장이 그랬을 것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 상처받기를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불행도 두렵고 무섭지만 자기 앞에 찾아온 행복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고(호리키처럼 놀 때만 어울리는 친구는 별도로 하고)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남들한테 호감을 살 줄은 알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저는 이 세상 인간들에게 과연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지 어떤지 대단히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남들은 나를 좋아해 주고, 남들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이 불행한 제 기벽을 시게코한테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비루하게 쭈뼛쭈뼛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가버린 자에게 요시코의 순결무구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아오바 폭포처럼 상큼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오수로 변해버렸습니다.

 

☞ 요조는 순결무구한 신뢰심을 지닌 요시코의 장점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 장점이 칼날이 되어 자신에게 상처로 꽂히자 괴로워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하던 요조를 더욱 고뇌에 빠지게 만든다. 

요시코를 사랑한 이유는 요조의 결핍에서 기인한다. 요조한테 없는 걸 그녀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코의 장점이 없어지고 나니 더는 그녀가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떠나게 된 거다.

 

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한 법이니까.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거절할 때보다 거절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나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도 조금씩 거절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감히' 거절할 수 없었던 시절엔 나 역시 주인공과 같이 이런 마음이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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