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순간이었다.
모든 것은 순간의 선택이었다.
그날 아침, 그 시각, 그 차량에 타지 않았더라면...
미어터지는 전철에 억지로 구겨타지말고
다음 전철을 탔더라면...
승차문 6-2 언저리가 아닌 7-1이었다면
모든 것은 일이 터진 후에
쓰나미 같은 후회가 몰려온다.
그날 전철 안 사람들은 좁아터지는 가운데
모두 각자 전투심을 갑옷처럼 입고서
굳건히,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와
밖으로 나가려는 자의 팽팽한 줄다리기.
일보진입을 위해서 이보후퇴를 했어야만 했었다.
밀려나갈 수는 없다고 완강히 버티던 힘은
밀어붙이는 힘을 절대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전철밖으로 한 발짝 밀려나고
중심을 잃은 그 순간
누군가 나를 또 밀었다.
내 오른발이 전철과 승강장 사이 틈으로
빠지면서 넘어져버렸다.
허벅지가 아프다 못해 아려왔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를 쓰러뜨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괜찮으세요?"
어떤 여성분의 말이 들렸지만
그분이 누구인지 볼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살벌한 지옥철 출근좀비 속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꽈당하는 순간, 이러다 안경이, 얼굴이,
머리가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아득했다.
순식간에 넘어지고 다쳤듯
순식간에 허벅지는 부어서 부풀어 올랐다.
내가 평소 무심히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엔
보이지 않는 허벅지의 헌신이 있다는 냥
걸을 때마다 허벅지가 아려왔다.
허벅지 다음으로 충격을 흡수한 팔꿈치도
붓는 게 느껴지면서 삽시간에 묵직해졌다.
출근하면서 퇴근을 생각했지만
일단 출근을 감행했다.
불행 중 다행
타박상으로 끝났지만 만약 중상을 입었더라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알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으리라.
과연 내가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서둘러 내리려다가
내 앞사람을 밀었는데 넘어졌다면 그냥 지나쳤을까?
나만 아님 되고, 나 혼자가 아닌
떼거지로 몰려나왔다면
아무래도 좋은 그런 걸까?
전철을 타고 내리고 오가는 사람들이
일순 무시무시한 흉기처럼 느껴졌다.
저들은 언제든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
오늘의 교훈은
누군가 다치면
외면하던 내가 되지는 말자.
건강했기에 몰랐던 아프고 다친 이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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