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이 연출하고
박해준, 이항나, 유재상, 최무성이 출연한
영화 <4등>을 봤다.
이 작품은
천재. 재능. 노력. 절박함. 자식교육 등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웰메이드 영화를 만난 기분이라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일단 왜 제목이 4등일까를 생각해 봤다.
1등은 늘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뺏기지 않을까 불안하다.
2등은 1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들다.
3등은 상위권 안에 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한다.
4등은 조금만 더 하면 상위권에 들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 아깝고도 힘겹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4등> 포스터를 보면
주인공 유재상의 세상행복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4등이지만 괜찮아.
난 수영이 좋으니깐!
하는 것만 같다.
이 한 장의 포스터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듯하다.
줄거리
영화 <4등>은 만년 4등인 수영선수 준호(유재상)가 엄마의 등쌀에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를 수영코치로 영입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성적제일주의를 요구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으며
불행한 1등보다는 행복한 4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인공 준호가
4등을 뛰어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게 궁금하다면 성적이 행복순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일 것이다.
영화 <4등>은 결말보다는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로 접근하면
흥미로운 영화감상법이 될듯하다.
특히,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영화를 본다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스포주의)
박해준
재능만 믿었던 오만한 천재의 몰락
박해준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잘 나가던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만 믿고서
훈련을 게을리하고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런 자신을 매로 다스리며 잡아주려는
코치에게 앙심을 품기까지 한다.
박해준의 국가대표 선수시절은
정가람이 맡아 연기를 하는데 흑백처리되어 나온다.
'과거의 회상'이라는 의미도 담겨있겠지만
제일 잘 나가던 화려한 시절을
칙칙한 흑백화면으로 보여주는 건
정지우 감독이 역설적인 연출을
한건 아닌가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월이 흘러 컬러화면으로 바뀌면서
반짝이던 국가대표선수의 모습이 아닌
흐리멍덩한 눈빛의 박해준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퇴물이 되어버린 그에게
젊은 시절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준호를 만나면서
그도 변하기 시작한다.
선수시절 자신을 혹독하게 매질했던
코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강요에 의한 훈련보다는
본인이 간절히 원해야만 즐길 수 있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배운다.
박해준은 부산 출신답게 입에 착착 감기는
부산사투리로 연기를 하는데
마치 성격의 일부분인 것처럼
캐릭터의 리얼함을 더해준다.
연기 잘하는 배우인 줄은 알았지만
적당히 속되고 능청맞고 뻔뻔하면서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전직 국가대표선수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해 내서
영화의 몰입감도 높여주었다.
유재상
1등 하면 어떤 기분이에요?
영화 <4등>의 주인공인 유재상은
수영도 잘하고 연기도 자연스럽다.
그의 잠수신을 보고 있노라면
물개, 인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몸놀림이 유연하고
물속에서 진정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유재상은 4등을 벗어나기 위한 엄마의 욕심에 이끌려
수영코치 박해준에게 훈련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박해준은 점점 빡세게 연습시키고 매질도 잦아진다.
이를 못 견딘 유재상은 수영선수를 포기하려 한다.
엄마와 동생
4등 하고는 못 살아~~
형이 수영을 다시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나를 괴롭히니깐.
지고는 못 사는 욕심쟁이 엄마역을
너무나 잘 소화하는 이항나는
영화 <4등>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자신의 욕심을 자식에게 투사시키는
교육열 넘치는 엄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투머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보며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게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유재상의 동생은 동생 나름의 괴로움이 있었다.
수영을 포기한 형 대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감을 떠안게 된다.
아버지
내 아들 문제가 되면 얘기가 틀리지.
준호의 아버지 최무성은
자식교육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다.
그도 그럴게 엄마의 치맛바람이 세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아들이 4등을 벗어났을 때
그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아들에 대한 체벌이 있었음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낸다.
남의 자식이 체벌에 대해 운운할 땐
맞을만하니깐 때렸겠다고 하던 사람인데 말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써야 할 기자가
같은 일에 다른 잣대를 대는
이중인격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수영을 계속하려면 1등을 해야 돼서요.
유재상은 수영을 쉬는 동안
그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건
수영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부모와 사이가 틀어진
박해준을 다시 찾아가 코치를 부탁한다.
그러나 박해준은 이를 거절한다.
어쩌면 1등이라는 건
누군가 잡아주고 코치해 주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절박함만이
나를 노력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유재상에게서 처음으로
그 '절박함'을 엿본 것이다.
잔인한 4등에서 아름다운 4등으로
수영천재였던 코치는
선수시절 자만했었던
자신을 미워한다.
반짝였던 그때만을 얘기하며
뒤늦게 후회한다.
그리고 준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장 잔인한 게 4등이다.
코치는 아이라도 잘돼서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
옛날에 자신의 코치가
자기를 좀 더 엄하게 다스렸더라면
잘됐을 거라며 남 탓을 한다.
그렇기에 준호를 빡세게 잡으면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준호의 엄마는
노력이란 걸 안 해본 사람이라
자신의 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준호의 아빠는
노력이란 걸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취재는 해본 사람이라
꿈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왜 다들 난리지? 하며 무관심한 편이다.
등수가 잔인한 게 아니라
꿈을 좇아가는 상황이 잔인한 것이고
등수로 말하니 더 잔인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실제로 준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 입장에서는 수영이 좋아서 하는데
그냥 4등 하는 거다.
수영하기 좋은 체형을 타고났고
수영하는 게 행복한 거다.
준호에게는 자기만족이 더 중요하다.
영화 후반, 수영을 관뒀다가
수영이 하고 싶어서
준호는 다시 수영장을 찾는다.
그게 진짜 아름다운 거다.
아름다운 4등
난 좋아서 하는 4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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