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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들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후기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by monozuki 2025. 2. 17.
koenjazh-TW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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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와

절친이 감명 깊게 본 책이라 하여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고전에 취약한 편인지라 

과연 내가 이걸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섰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사서 읽어 보았다.
막상 도착한 책을 보니 엄청난 두께에 헉스~!
책의 분량에 압도되어 언제 다 읽나 했는데 

막상 댐벼들었더니 흡인력 있게 쭉쭉 잘 읽혀서 

3일 만에 홀라당 읽어버렸다.
아무래도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엔 

절친이 어떤 대목을 좋아하고

어떤 부분에 감명받았을까? 를 상상하면서
읽게 되어 더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비록 안소니퀸이 나왔던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어릴 적 명화극장에선가?
앤서니퀸이 신명 나게 춤추는 부분을 

봤던 기억이 선명한지라
읽는 내내 조르바=안소니퀸을 떠올리면서 

읽어나가다 보니 몰입하기도 쉬웠던 거 같다.

음... 다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 거침없는 행동력, 

삶에 대한 열정,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여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엿보였는데 

처음 읽었을땐 왕마초적 사고와

희대의 바람둥이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는 여자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여자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진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과 조르바를 통해 '이성과 감정', '생각과 행동' 

'경험과 지식'의 양면을 대조하듯 

보여주는 전개도 좋았고
특히, 매사를 처음 대하듯 늘 새롭게 바라보는 

조르바적 관점도 맘에 들었다.
또, 주인공을 보면서 어쩐지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경험보다는 지식이, 행동보다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그래서 가슴보다 머리가 더 앞서게 돼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면에 있어선 나를 반성케 한달까?

 

 

 

 

 

 

인상깊은 구절

내가 가장 맘에 드는 대목을 잠깐 소개하자면,

 「(중략) 산투르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되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이들 대목은 '그래! 정열이란 바로 저런 거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조르바의 정열에 대한 정의를 통해
정열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만들었고 

조르바의 삶에 대한 자세, 

삶의 철학이 엿보여서 인상 깊게 와닿았다.
이 책은 종교적이고도 철학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내 짧은 머리로는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제법 있었지만 

두고두고 소장해서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마다 또 다른 감흥과 느낌으로 다가오겠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생각의 키가 

훌쩍 자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그래도 다 읽고나서 보니 읽으면서 

맘에 드는 문구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도배질이 되어있었다.
그만큼 알찬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는 증거리라.
암튼, 책을 읽으니 영화도 궁금해져서

언제 한번 영화도 봐볼까 싶다.


책 속으로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베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어요?>

금화를 약탈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세상만사에는 숨은 뜻이 있으려니 싶었다.
사람, 동물, 나무, 별은 모두가 상형문자, 
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 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 있을진저.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사람이며 동물이며 나무며 
별이라고 생각할 뿐.

이해할 나이에 이르면 때는 늦는 법....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게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채찍이 되어 날아들었다.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

나라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금욕주의자가 되었거나 
그들을 가짜 깃털로 꾸며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주었다.
열심히 데워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같은 구석이 없는 놈일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그러면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이 이야기면 설명이 되겠군.
어렸을 때 말입니다. 
나는 버찌에 미쳐있었어요.

하지만 돈이 있어야지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는 살 수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화가 났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요.
어쨌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나는 밤 중에 일어나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지요. 은화가 한 닢 있습디다. 꼬불쳤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살지요.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었어요.
나는 구원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건 
내겐 할 말이 있습니다.

이제 너하고는 별 볼일이 없구나 하고요.
훗날 담배나 술을 놓고도 
이런 짓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는 고향 생각이 날 괴롭히는 일이 없어요.」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나는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르바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놓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 자신을 격려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재수 없는 사람은
자기의 초라한 존재 밖에도

스스로 자만하는 장벽을 쌓는 법이다.
이런 자는 거기에 안주하며 

자기 삶의 하찮은 질서와 안녕을 
그 속에서 구가하려 하는 게 보통이다.
하찮은 행복이다. 
만사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험한 길, 신성한 길을 따르다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에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된 

하찮은 확신의 테두리 안에서 
지네처럼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무 도전도 받을 수 없다.
숙명적인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적은 오직 하나, 
터무니없는 확신뿐이다.
확신은 내 경험의 벽을 허물고 
내 영혼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으로, 호쾌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는 실존 인물이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잔차키스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인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를 이해해야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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