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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긴긴밤 [어른을 위한 동화] - 루리 저

by monozuki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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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번 작품 역시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아동서이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철학서랄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은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삶의 여정을 그렸는데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과 수없이 긴긴밤을 보내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나오면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거기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이야기가 전해주는 울림은 크고 깊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수있는거야...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않는 몇 안되는 일들 중 하나야. 

 

따뜻하고 편안한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기로 선택하는 노든은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아이와 닮아있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도전과 모험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시험삼아 오늘 나한테 바깥세상 얘기나 들려줘봐.

 

바깥세상으로 나와 노든이 겪은 첫번째 시련은 가족을 잃어버린 일이었다. 슬픔과 분노에 찬 노든을 다독여준 것은 동물원 친구 앙가부였다. 그런 앙가부를 인간의 손에 의해 또다시 잃게 된다.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과 뿔이 잘려나간 상실감에 빠진 노든은 동물원을 탈출하면서 알이 담긴 양동이를 입에 문 펭귄 치쿠를 만나게 된다. 노든은 바다를 찾아 나선 치쿠의 여행동반자가 되어 함께 길을 떠난다.

 

무엇보다 노든은 치쿠와 보내는 시간이 좋았고, 함께 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함께'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노든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치쿠는 동물원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펭귄이었고, 그런 치쿠에게 동물원밖의 세상은 혹독했다.

 

결국 치쿠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슬픔에 빠져있을 겨를도 없이 알을 깨고 나온 어린 펭귄을 돌봐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하는 이유는 치쿠와 윔보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해."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우리는 상처투성이었고, 지쳤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수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삶이란 참 녹록지 않다.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하는 것. 살아내야하는 것.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과 절망을 어찌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긴긴밤이란 힘들고 고단한 우리의 삶이 아닐까. 하지만 서로가 믿고 의지하며 버텨내면 파란 지평선을 만날 수 있으리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불행한 코뿔소인데 제멋대로인 펭귄이 한마리씩 곁에 있어줘서 내가 불행하다는 걸 겨우 잊고 사나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불운한 알에서 태어났지만 무척 사랑받는, 행복한 펭귄이었다.

 

코끼리-코뿔소, 동물원 동물-야생동물, 코뿔소-펭귄 등 이 책에는 전혀 다른 조합들이 나온다. 이질적인 것, 나와는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우리'가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곁에 있는 친구, 가족, 연인의 소중함을 잊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털어놓기 일쑤이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존재인데 말이다.

 

오늘도 긴긴밤을 보낼 우리, 언젠가 만날 파란 지평선을 꿈꾸며 힘내보자!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