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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by monozuki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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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쇼코의 미소》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최은영의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2년 동안 한 계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을 향한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에 소설로써 응답해 온 저자가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매만지며 퇴고해 엮어낸 소설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 어떤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과거를 불러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지기 전의 삶이 가난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대에게 몰두했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과 위선으로 이별하게 된 지난 시절을 뼈아프게 되돌아보는 레즈비언 커플의 연애담을 그린,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 여름》과 악착같이 싸우면서, 가끔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지나가는 밤》 등의 작품이 담겨 있다.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9.06.20

 

 

책제목: 내게 무해한 사람
출판사: 문학동네(2018)
저자: 최은영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문장은 많은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주어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고 생각하며 읽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적셔보는 게 얼마만인지...

그녀의 작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몰랐던 내 마음,

내가 몰랐던 남의 마음,

이 모두를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 여름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으로 열여덟에 만난 이경과 수이의 사랑이야기(레즈비언 커플의 연애담)다.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이지만 그러기엔 우리는 너무나 젊다.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타인의 매력은 외면하려 할수록 더욱 나를 강하게 끌어들인다. 다른 이에게 끌리는 감정묘사가 탁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흔들리고 변해가는 사랑의 감정을 그렸다. 섬세한 묘사로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 담아두고 싶은 표현들 ♧

- 이런 수이의 모습을 아는건 자기뿐이라는 생각에 이경은 부드러운 기쁨을 느꼈다.

- 그녀가 가고 나면 그녀를 볼 수 있었다는 행복감과 그만큼 더 커진 그리움에 마음이 얼얼했다.

- 기본적으로 배열이 잘된 이목구비가 호감가는 인상을 줬다.

- 겨우 시작된 대화가 다시 끊기자 어색해져서 윤희는 국 끓는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고마움을 느꼈다.

- 공무는 모래를 보는 일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보였다.

-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따로따로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 것만이 온전한 대화여서 어떤 말을 하든 그 대화의 균형을 깨뜨릴 것 같았다.

- 별로 애정 없는 물건이 파손되었다고 이야기하는듯한 사람의 얼굴로.


 

수이와 함께 있을 때 이경은 자신이 다른 몸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경과 코로 들이마시는 숨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까지도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기관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었다. 수이를 만나기 전의 삶이라는 것이 가난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면서 세상은 달라진다. 아니 달리 보인다. 그러면서 생기는 벅찬 기쁨, 설레임, 마음의 풍요로움을 우회적으로 잘 표현한듯하다. 

 

이경은 수이에게 어떤 행동도 숨기지 않았다. 이경의 말 그대로 이경과 은지는 가끔씩 저녁을 같이 먹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종로 거리를 걸었을 뿐이니까. 단지 이경의 마음만은 그런 행동이 수이를 배신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속이지 않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경은 은지를 만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커플 사이에서 정의되는 '바람'은 어디서부터일까. 어떤 행동도 숨기지 않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거기서부터 바람인 걸까. 

 

자기 상처로 누군가를 조종하는 일이 가장 역겹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런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601, 602

순식간에 읽히는 단편이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로 같은 아파트 601호, 602호에 사는 효진과 주영은 이웃사촌이다. 효진의 오빠는 집안에서 효진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한다. 가족 누구도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맞다. 그땐 그랬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겠지라며 아무렇게나 폭력이 허용되고 묵인되던 야만적인 시대에 나도 살았었다. 7080 정서가 많이 묻어나서 공감하며 읽었다. 사연없는 가정없다고. 겉으로 보기에 화목해보이는 가정이어도 실상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듯 그곳엔 더 깊은 어둠이 깃들어있을 수도 있다.

 


 

지나가는 밤

읽으면서 울컥한 단편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윤희와 주희, 두 자매 이야기다.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는 주희와 달리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윤희, 둘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사람을 찾게되는 주희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윤희는, 그래서 더욱 주희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혼자를 견디지못하고 사람을 찾게 될 때가 있잖아. 그게 잘못은 아니지. 외롭다는 게 죄는 아니지. 알면서도 왜 네가 그러고 지내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을까. 너에게서 내 모습이 보여서였나봐. 그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그랬나봐.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그저 그 마음을 억눌렀던 것뿐이었으니까.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모래로 지은 집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단편이었다. 통신친구로 만나 20대의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모래, 공무, 선미의 사랑과 우정이야기다.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제목처럼 이들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같기도 하지만 언제 파도에 쓸려갈지 모르는 모래로 만든 집처럼 위태롭기도 한다. 모래와 공무, 서로를 좋아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속인다. 거기에 공무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툰 선미. 그래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들 셋 모두가 좀 더 자기 자신을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 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어린 나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 착한 아이가 되면, 훌륭한 아이가 되어 민폐 그 자체인 내 존재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부모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를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 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공무 말대로 늘 생각하고 걱정된다고 해서 사랑인 건 아니니까.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내 힘으로 제대로 서있지를 못해 자꾸만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했던 거야. 내가 기대어 서 있는 벽이 자꾸만 무너지고 벽이 아니라 나를 해치는 돌덩어리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걸 털고 일어나서 자기 힘으로 서있으려고 하지 못했어.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 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내게 무해한 사람

 

 

고백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되는 단편으로,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제목의 시작도 이 문장에서 비롯됐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미주, 주나, 진희의 이야기로, 절친 삼총사는 진희의 커밍아웃과 자살로 인해 관계의 균열이 생긴다. 미주와 주나는 슬픔, 원망, 죄책감 등을 숨긴 채 각자의 상처를 안고 멀어졌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아줄 것만 같은 절친사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이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는 내 불편한 감정이 먼저였을 어린 나이였기에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나는 누군가에게 유해한 사람인가, 무해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손길

이 단편은 한때 숙모 손에 자란 혜인이 성인이 된 후 헤어졌던 숙모와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다. 숙모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 시댁의 핍박을 받으면서 남의 자식을 제 자식마냥 키웠다. 그런 숙모의 마음을 뒤늦게나마 혜인은 깊이 헤아려본다. 그 시절의 어른들이란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기 일쑤였다. 이 또한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  

 

어떤 나이까지 자식은 부모를 무조건 용서하니까.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도 없이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 버린다...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렇다. 나역시 살면서 역행하지 않는 마술을 여러번 봐왔다. 인생의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비둘기는 결코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어둠과 밝음의 성질을 잘 알기에 누군가는 이를 역이용한다. 나의 어둠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밝은 쪽을 택하기도 하는...

 


 

아치다에서

 

단편들 중 유일하게 외국이 배경인 작품이다. 아치디의 한 과수원에서 알게 된 브라질인 랄도와 한국인 하민의 이야기로, 하민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고 랄도는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그런 그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낯선 땅에서 점차 친해지면서 속마음을 터놓는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들이 연인으로 발전할 것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