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김중혁의 단편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 후기이다. 김중혁은 김천 3대 문인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중의 한 사람이다.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그의 소설이다. 음...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가는 분명 아니라서 흡인력은 없지만 사물-여기서는 악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통해 이야기를 풀고 있어서 그 점은 높이 평가할만한 것 같다.
자동피아노
"음악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입니다. "
한 피아니스트가 20년동안 콘서트홀에 간 적이 없는 거장 피아니스트를 알게 되면서 음악에 대해 가진 각자의 생각들을 주고받는 내용의 이야기다. 거장 비토는 주인공에게 예술가란 자신의 몸을 통째로 예술에게 빌려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자동피아노 같다고 한다. 뭔가 분석하지도 않고 해석하지도 않은 투명한 느낌이 드는...
글쎄... 이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도 많은-잡스런 음악까지 포함-음악이 생성되고 있는 요즘, 진정한 음악이 남기 위해서는 소멸될 필요가 있다는 얘길 하는 건가? 싶었다.
매뉴얼 제너레이션
재밌게 읽은 단편중 하나다.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생각해 보니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그 제품만큼이나 매뉴얼도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포착해서 좋았다. 매뉴얼 제작회사를 다니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지구촌 플레이어 매뉴얼에 대해 의뢰사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사장과 식사를 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죽은 언니로부터 받은 오르골에서 지구촌 플레이어의 모티브를 얻었단 이야기를 한다. 언니의 유물로, 매뉴얼도 없고 오르골 작동법을 몰라 10년 동안 음악을 못 듣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사연도 있고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이다.
비닐광 시대
이 작품역시 인상적으로 읽은 단편이다. 이것저것 음악들을 섞어서 리믹스하는 DJ에 대한 불만을 가진 한 또라이의 DJ감금기다. 지금은 사라진 LP에 대한 추억도 떠오르게 하면서 어떤 이유로 감금당하고, 그 또라이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집중력 있게 읽게 한다.
" 좋아요. 디제이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됐어요?"
" 저런, 자의식이 없구만. 그렇게 금세 왔다 갔다 하나?..."
악기들의 도서관
"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
교통사고 이후, 백수가 된 주인공은 우연히 악기점에서 알바로 일하게 된다. 그러면서 악기들의 소리를 녹음하며 나름의 취미를 가지게 되고, 악기에 대해 알게 되고 악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 악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도 이 단편을 통해 관악기는 공기울림악기, 현악기는 줄울림악기, 타악기는 몸울림악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기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위 말이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라 몇 번을 곱씹게 된다.
소리가 날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실제로 거기에서 소리가 날것이라고 장담은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상품들이었다.
유리방패
이 단편은 악기와 거리가 먼 소재이긴 하나 취업이 어려운 현세태를 비꼰 작품으로, 쌍둥이처럼 항상 붙어 다니는, 또는 실과 바늘처럼 항상 붙어다니는 주인공과 M이 계속된 면접탈락 후, 우연찮게 면접전문관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실을 감고 다니는 두 사람의 행각이 뭔가? 싶었지만 실패를 거듭한 이들이 실패를 가지고 다니다가 면접전문관이 되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던 거 같다.
다음날 술에서 깨어났을 때는 토성의 고리처럼 내 머리 주변에 두통의 고리가 둘러져있었다.
" 왜 하필 실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워낙 실패를 자주 하다 보니 거기에서 실이 풀려나온거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나와 B
음반매장에서 일하는 주인공과 CD도둑인 기타리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전기기타를 배우게 되는 계기를 그린 이야기로 그닥 내 흥미를 끌지 못한 작품이었다.
비둘기들은 걸으면서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래, 좋아, 옳지, 그렇지, 맞지, 그거야,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비둘기들의 성격이 긍정적이었던가?... 아무튼 비둘기들에게는 긍정적인 리듬이 있었다.
기억이란 중력의 법칙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무방향버스
약간 추리적인 기법을 쓴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기위해 큰책이라 불리는 장부를 단서로 엄마를 찾아다니는 남매의 이야기다. 장부에 적힌 의문의 숫자는 버스들의 번호였고, 똑같은 노선을 계속 반복하던 버스가 어느날 감쪽같이 사라지는 무방향버스의 번호임이 밝혀진다.
가게를 보며 매일 똑같은 일상, 삶을 살아온 엄마=무방향버스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버스기사의 입을 빌어 번호를 보지 않아도 멀리서도 그 버스가 몇 번임을 알 정도로 똑같은 노선을 다닌 버스는 그 버스만의 정형이 있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엇박자 D
공연기획자인 주인공은 엇박자 D와 우연히 만나 둘이서 공연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총감독은 엇박자 D가 맡아하게 되고, 그는 하이라이트에 음치들의 합창을 통해 어릴 적 음치로 받았던 수모를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이 작품은 상을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내용은 그닥 재밌지는 않았다. 단지 음치라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라 괜찮았다. 음치도 음치 나름대로 인정을 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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