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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나의 단편소설] 뜻밖의 하룻밤 (후편)

by monozuki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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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하룻밤
뜻밖의 하룻밤



새벽 무렵, 선잠에서 깬 나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화장실불이 꺼져있었다.
분명 켜놓고 잤다고 생각했는데 

습관적으로 불을 꺼버린 것이었다.
불을 켜자 덜덜 떨고 있는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만두를 컴컴한 곳에 가둬둔 것만 같아 

몹시 미안했다.
나는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며 

곁에 있는 만두를 내려다봤다.
만두도 그런 나를 올려다봤다.
만두의 눈을 그때서야 제대로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렁그렁한 눈빛이었다.
한밤에 깨어 말 못 하는 짐승과 

한 공간에서 말없이 서로 쳐다보고 있는 이 상황이
내게는 몹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를 현실로 되돌린 거 역시 만두였다.
만두는 내게서 등을 돌리더니 코를 킁! 거렸다.
나도 만두를 따라 코를 킁킁거려 보았다.
묵은 똥내가 훅 났다.
피식 웃음이 났다.
웃다가 배변패드로 눈길이 갔다.
아주 깨끗했다.
볼일을 다 본 나는 만두에게 서서히 손을 뻗어
만두의 등에 손을 살짝 얹어보았다.
낯설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만두가 가만히 있었으므로 

이번엔 조심스레 등을 살살 쓰다듬어보았다.
만두는 나를 바라볼 뿐 내가 하는 대로 가만있었다.
‘만두야~’
나지막이 불러보며 

몇 번을 더 쓰다듬어주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침대에 누웠다.
이 새벽에 나 이외에 깨어있는 생명체가
문지방너머에 살아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잠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렸다.
‘만두가 차가운 화장실에서 

밤새 추워 죽으면 어떡하지.’
‘똥오줌도 못 쌌는데 병나는 거 아니겠지.’
‘에이, 데리고 오는게 아닌데...’
모든 신경은 온통 만두에게로 가 있었다.
일어나서 화장실문을 열어보았다.
만두는 박스 안에 그대로였다.
‘무서운가?’
‘추운가?'
‘배고픈가?’
개의 언어를 읽는다는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물을 권해봤지만 만두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만두가 덮고 있는 담요를 

고쳐 덮어주고는 침대로 돌아왔다.
다시금 낑낑대는 소리가 났고 베개로 귀를 막았다.
그러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만두를 차마 방안에 들여놓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수납장에서 두터운 비치타월을 꺼내
만두에게 덮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집안가득 아침햇살이 쏟아졌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잠들었다가 깼다.
나는 눈뜨기 무섭게 화장실문을 벌컥 열었다.
만두는 살아있었다.
잠이 덜 깬 만두와 시선이 마주쳤다.
비치타월은 팽개쳐진 채 

맨몸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감기라도 걸렸나?’
나는 만두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 말고 다시 거두어들였다.
간밤에 어루만져주자 

낑낑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치킨캔을 하나 까서 만두에게 내밀었다.
만두는 통조림에 얼굴을 박고서 정신없이 먹어댔다.

전날밤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그를 만날 것을 생각하면 씻어야만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두를 옮겨야 했고
잡동사니로 가득차 있어 문을 닫을 수 없긴 했지만
창고방이 적당해보였다.
나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서 

만두를 어떻게 옮길까를 고민했다.
나중에 만두를 데리고 나갈 걸 생각하니 

박스채로 들고 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수납장을 뒤져 커다란 비닐쇼핑백 하나를 찾아냈다.
화장실로 들어가 만두가 들어있는 상태에서
박스를 쇼핑백으로 덧씌우려했다.
그러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만두를 박스에서 꺼낸다,
박스를 쇼핑백안에 집어넣는다가 맞는 순서겠지만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만두가 담긴 박스를 쇼핑백에 억지로 넣으려고 

이리저리 기울이자 만두도 어쩔 줄 몰라하다가 

박스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쇼핑백을 떨어뜨렸다.
만두는 나와서도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만두가 움직일세라 

빈 박스에 쇼핑백을 후다닥 씌웠다.
그리곤 만두의 눈치를 살핀 후 

몸통을 조심스레 움켜잡고는 

박스 안에 얼른 집어넣었다.

이제 만두를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만 하면 됐다.
쇼핑백을 들어올리려는데 

한쪽 손잡이끈이 보이지 않았다.
박스 안을 자세히 보니 

만두의 한쪽 앞발에 끈이 감겨있었다.
만두를 박스 안에 급하게 집어넣느라 

끈을 빼지 않고 넣었던 것이다.
나는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두의 몸통을 만지는 건 펄떡이는 생선을 

맨손으로 만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만두가 몸부림치며 날뛸지도 모르고 

잘못해서 날 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고쳐끼고 

만두의 앞발에 감긴 끈을 풀기 위해 

손을 휘적거렸다.
잔뜩 긴장하다보니 그 간단한 일도 쉽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만두를 번쩍 들어 올리고서야 

엉킨 줄을 풀 수 있었다.
창고방에 만두박스를 내려놨다.
그 앞에 빨래건조대를 가로로 눕혀놓아 

바리케이트처럼 막아뒀다.

 

 

 

 

 

 



런치타임 전까지 만두를 카페로 데려가기로 했다.
나는 만두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메고서 

대로변으로 나왔다.
만두는 미친 듯이 오들오들 떨었다.
‘왜 그러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렸다.
유턴해서 돌아오는 택시를 발견하고 얼른 세웠다.
차에 타자마자 

만두는 쇼핑백 밖으로 뛰쳐나오려했다.
- 어머, 어떡해.
너무 놀란 나머지 만두를 

쇼핑백안으로 꾹 밀어넣었다.
다행히 만두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내 진정된 듯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만두를 쓰다듬어줬다.
그랬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만두는 그렇게 묻는 듯 했다.
나는 쓰다듬던 손을 떼고는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 정말 고마워!
그가 만두를 안고서 내게 말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미소 짓고는 커피를 마셨다.
그는 만두를 임시보호소에 데려가줄 사람이 

곧 온다고 했다.
카페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 자기야~
나는 뒤돌아봤다.
그를 향해 환하게 웃는 여자 한명이 서있었다.
그는 만두를 내려놓고 

그녀에게로 다가가 가볍게 포옹했다.
나는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잔속 커피가 미세하게 물결쳤다.
그때였다.
발밑에서 뭔가 움직였다.
테이블 아래를 보니 만두였다.
만두는 내 발주위에서 냄새를 몇 번 맡더니
똬리 틀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았다.
그러더니 앞다리에 턱을 괴고

엎드려서는 눈을 감았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