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다. 타닥탁. 우다다. 우다다. 타닥탁. 우다닥.
키보드 두 대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있다.
이들의 소리는 한데 섞여있으나
날카롭다가도 둔탁하고 둔탁하다가도 날카로워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
**회사 DB부 사무실 한쪽 벽면엔
계약직원 책상 2개가 놓여있고
그 위에 우다다와 타닥탁이 나란히 놓여있다.
우다다는 키캡이 낮고
엔터키가 일자형인 까만 키보드로,
사람손을 많이 타서 자판의 글씨들이
군데군데 지워져 있다.
타닥탁은 키캡이 높고
엔터키가 역ㄴ자 모양인 하얀 키보드로,
손때가 별로 안 타서 비교적 깨끗했다.
지금 우다다와 타닥탁은 주인의 손놀림에 따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자판을 두드리는
두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우다다의 주인은 20대 후반의 조민아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에
가늘고 긴 눈을 지녀서 웃으면 귀엽지만
돌출된 입 때문에 가만있으면
화난 사람처럼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녀는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이곳에서 1년반째 자료입력일을 하고 있다.
회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퇴근 때까지 하루 할당량만 채우면 됐다.
오지랖이 넓은 조민아는
이 부서 저 부서로 돌아다니며
회사사람들과 노닥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자리에 앉아있더라도 주로 친한 언니들과
메신저로 수다를 떠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타이핑이 빨라서 우다다~ 일을 몰아쳐서 하곤 했다.
우다다는 조민아의 손끝이 자신의 몸에만 닿아도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를 금세 간파해 냈다.
손놀림이 경쾌하고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질 때는 그녀가 지금
누군가와 폭풍수다를 떨고 있다는 거다.
또, 열손가락이 발톱세운 고양이처럼 모두 굳어있고
손목에 스냅을 줘가며 엔터키를 내리칠 때는
그녀가 짜증나고 화가 나있다는 거다.
조민아의 그런 습관 탓에
우다다의 엔터키는 여러 번 고장이 났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키보드가 사지멀쩡해도
엔터키가 먹통이면
아무것도 전할 수 없는 병신이라며 투덜댔다.
그런 반면, 타닥탁의 주인은
30대 중반의 엄정연이다.
날씬한 체격에 피부가 뽀얗고 눈매가 둥그스름해서
제 나이보다 어리고 유순해 보이는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그동안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다가
생계에 쫓겨 열달전 이 회사에 들어왔다.
원래 말수가 적은 그녀인지라
컴퓨터 앞에 앉아 타닥탁.
자기에게 주어진 자료만 묵묵히 입력하면 되었기에
짠돌이 회사라도 다닐만 했다.
또,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어서
조민아를 빼고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없었다.
입사 때부터 붙임성이 좋은 조민아가
‘언니 언니’하면서 그녀를 잘 챙겨줬으며
엄정연도 그런 그녀를 믿고 잘 따랐다.
눈치 빠른 타닥탁은
엄정연의 손끝이 닿자마자 접신한 듯
그녀의 마음을 단박에 읽어냈다.
명쾌하고도 리드미컬한 그녀의 손놀림이
갑자기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이 되면
그것은 딴 짓을 하느라 들킬까 봐 조심하고 있다는 거다.
또, 가끔 엄정연이 타닥탁의 몸판을
뒤집어 탈탈 털거나
타라락~ 트라락~ 온몸을 물티슈로
빡빡 닦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그녀가 오타가 많이 나와서 혼난 날이거나
조민아의 일까지 떠맡아 야근하게 된 날인 경우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달 뒤 재계약이 안될지도 모르고
싫은 소리를 못하는 그녀인지라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엄정연이지만 타닥탁이 납작 엎드려있을 때도 있다.
그녀가 하던 일을 갑자기 멈추고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누를 때인데
소리에 예민한 엄정연의 신경이
곤두서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다다와 타닥탁은
전혀 다른 두 주인을 모시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주인이 쓰는 문서, 메일, 메신저 등
모든 것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비밀까지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다다. 타닥탁. 우다다. 타닥탁.
조민아와 엄정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친해졌다.
우다다는 조민아가 전해주는
사내에 떠도는 각종 소문들과 가십들을
열심히 엄정연에게 옮겨날랐고
타닥탁도 그걸 받아
엄정연이 전하는 답장을 보내느라 서로 간에 바빴다.
ㅌㅏㄱ ㅌㅏㄱㅌㅏㄱ
그 와중에
사무실 구석 자리의 ㅌㅏㄱ ㅌㅏㄱㅌㅏㄱ은
독수리처럼 자신의 몸을 느릿느릿 쪼아대는
백 부장의 손길에 괴로워하느라 정신없었다.
대략 사무실의 분위기는 이랬다.
그러나, 평화로운 나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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