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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들

미완의 궁상각치우 - 불균형, 노이로제, 퇴행 (3편)

by monozuki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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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궁상각치우 - 매리 B. 레이 저 (1편)

책제목: 미완의 궁상각치우 (1994)원서명: The story of psuchiatry저자: 매리 B. 레이 (Marie Beunon Ray)역자: 이재기장르: 논픽션 사이코 에세이 ※주: 궁상각치우(窮想覺恥憂) - 깊이 생각할수록 스스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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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궁상각치우 - 프로이트 & 아들러 & 칼융 (2편)

오늘은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심리학의 3대 거장(프로이트, 아들러, 칼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법,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체심리학, 칼융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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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완의 궁상각치우> 이야기는 오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정리해 보며 저자가 말한 궁상각치우(窮想覺恥憂: 깊이 생각할수록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는 뜻)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불균형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문구 중의 하나가 바로 '불균형'입니다. (중략)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성적으로 불균형이 되는 것입니다. 미쳐 날뛰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바로 감성인 것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태를 미쳤다고 말하기보다는 도리어 '감성적 불균형상태'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 성적 긴장감, 권태, 시기, 죄의식, 열등감콤플렉스 그리고 과민함과 같은 불행하고 파괴적인 감정들이 지배하호 용기와 자신감, 낙관 그리고 패기와 같은 건강하고 행복한 감정들은 산산이 부서져버린 상태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균형적인 감성은 균형 있는 삶을 통해 다시 추스려질수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에만 몰두한다거나 놀기만한다거나 아니면 몽땅 육체적인 일만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것이죠. 그러나 인간은 원래가 다면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니 이런 다면성 가운데 오직 한두가지만 만족된다면 감성적으로 불구가가 되는 셈입니다.

 

균형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람에게는 이것없이는 한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완성될수없는 4가지가 있습니다. 직업과 취미생활, 운동 그리고 사교활동이 그것입니다. 결국 균형있는 삶이란 이 4가지가 모두 포괄되어 있는 그런 삶입니다.

  

노이로제

노이로제 환자란 절망적으로 아픈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신적으로 어딘가에 아픔이 있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다. 어쩌면 노이로제란 원만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걸려보았을 것이고 더러는 자주 걸리는 사람도 있을 그런 유행성 감기에 비유될 수 있다. 폐렴보다는 덜 치명적이지만 그런 만큼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완전히 불구로 만들어 정상생활을 할 수 없게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상처와 후유증을 남겨놓는 감기말이다.

 

... 노이로제의 발병원인에 대한 가장 일목요연한 설명은...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우리 모두의 정신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갈등 자체는 피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런 만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내부에 있는 갈등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의식의 수면밑으로 가라앉히려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의식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저항의지가 있는 바로 그곳에 광기가 파고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고 그것을 묻어두고자 하는 갈등이 바로 노이로제의 숨은 원인이자 감염원인 것이다. 갈등은 비록 무의식 속에 묻힌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암약하다 결국에는 하나의 노이로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노이로제를 유발하는 것은 갈등 그 자체라기보다는 '갈등의 억압'인 셈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해소될 수도 없는 갈등이 소화불량을 시작으로 해서 정신착란증과도 같은 상태에 이르는 온갖 이상한 길로 사람을 제멋대로 몰고 다닐 때 그것이 바로 노이로제인 것이다. 

 

 

 

 

 

 

퇴행, 투사, 우울증

만일 어떤 사람이 삶의 불쾌한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된다면 아마 그는 여러 가지 가능한 '도피메커니즘'에 의존하려 할 것입니다. 이 메커니즘으로는 우선 '퇴행'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새로 구축한 세계로 들어가 그 안에서만 사는 것이죠. 이것이 정신분열증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자기의 무능과 결점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핑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투사' 혹은 '편집증'입니다. 혹은 자기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뇌를 만드는 것

인간이 자기의 생물학적 본성을 자기의 지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한 개인이 순전한 개인의 의지만으로 어떤 새로운 형질을 획득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다음 세대로 유전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유전법칙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럴 경우 인간은 그 어떤 노력과 의지를 기울인다 해도 동물적 속성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인간이 지금까지의 진화과정을 거쳐온 것은 오로지 인간의지의 발휘를 통해서였으며 그런 만큼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의지력의 발휘를 통해서 인종적으로나 개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이 내린 대단원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뇌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뇌를 만드는 것이다!

 

정신건강

둘이란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식의 양도론적인 절대가치가 아닌 '상대가치'의 보편적인 수용입니다. 이것은 정신건강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적인 건강함을 사회체에 잘 적응하느냐로만 판단한다면 그 자체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행태들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공동선은 창조적으로 실현하고 개인적 이기심과 사회악에 대해서는 능동적으로 거부하느냐라는 둘에 비춰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절대선이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사회부적응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자기에 대해서마저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자기에 대해 의미심장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정신의 척도가 아니겠느냐면서 저만치 시선을 모으는 그가 왠지 더 가까워 보인다.

 

<옮긴이의 프로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