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열려라 참깨
저자: 마광수
출판사: 행림출판사 (1992)
열려라 참깨를 읽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책을 출간하며 야한 작가로 악명 높은 '마광수'라는 이의 정신세계를 탐색하고자 그나마 덜 야하고 칼럼성격이 강한 에세이집을 골라 읽게 되었다. 그의 사고기저를 뒤덮는 야한 생각을 차치하고서라도 사회문제 또는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동원하여 피력하고 있는데 나의 상식에 보탬이 될만한 것들이 있었다. 또,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논리적인 이야기를 통해 나의 생각은 어떤가 하고 비교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내가 <열려라 참깨>를 통해 느낀 마광수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는 정말 유교적 사상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원색적인 솔직함을 드러내는 이단아같기도하다. 사회의 여러 가지 범죄(특히 늘어난 성문제를 비롯)를 우리 내면에 숨겨진 원초적 본능의 억압이 문제인지라 이를 해결하여야만이 사회의 각종 문제들도 감소할 거라는 이야기다. 해결책이 바로 성개방(간통제 폐지, 자유로운 성관계, 순결지상주의의 불식 등)인데 이 또한 지나치게 편견적인 마광수 자신의 사견(私見)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의 카사노바적 바람을 이루기 위한 남녀동등한 성개방을 부르짖는다는 거다. 내가 느끼기엔 그가 그렇게 '색'을 밝히는 데엔 어릴 적 환경이 어떤 콤플렉스가 되어 나타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점이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가 그렇다고 성격이상이란 얘기는 아니다.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며 그의 말마따나 상상으로나마 '대리배설'하고 그 역시 사회의 여건 등이 자길 누르고 있어 그 자신도 그걸 풀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로서 '대리배설'한다고 볼 수 있으니... 내가 보는 그에 대한 시각은 중립적으로, 그의 소설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두둔할 생각도 없다. 그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든 의구심 하나는 그가 어떻게 연세대 교수까지 되었는가 하는 거였다. 아무튼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건 문학계나 사회에서 그가 지극히 외설스런 글을 쓰고 보편적인 국민정서를 그르친다고 그를 매도해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 역시 자신의 성개방 운운하며 사회전체의 보수성을 매도하려들 지도 말자는 이야기다. 선은 악(惡)이 있기에 선(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듯.
이제 나는 곳곳에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며 열린 참깨를 닫으련다. '닫혀라 들깨!'
일단 그는 문학도답게 책을 많이는 읽은 거 같고 문학적 분석력이 엿보이는데 대개가 성(性)과 관련된 해석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많은 연애경험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대목엔 사실 역겨웠다. 한편으론 정말 도덕성과 무관한 솔직함을 지닌 이를 통해 남성심리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측면도 있었다. 천하의 카사노바가 되고자 하는 카사노바콤플렉스를 가졌고 담배를 즐긴다는 측면에서도 유아적인 남성기질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야한 여자가 좋다고 한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 따위를 주절댈 때면 그는 영락없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에고이스트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 한편 그가 풍수지리설이나 주역에 관심을 가졌다는 데엔 상당히 이채롭게 보였다. 마광수의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논리력과 풍부한(물론 그런 쪽으로의 상상력이지만) 상상력은 그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말미에 실린 콩트는 다분히 재치 있는 그야말로 '콩트'라는 장르를 잘 살린 글이라 흥미로웠다.
영화는 깨어있는 꿈꾸기
... 근본적으로 영화는 '깨어있는 꿈꾸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대체물로 '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해소해 나간다. 그렇다고 본다면 분명 우리는 꿈의 변형된 형태인 '영상'을 통해 그 안에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보며 꿈에 동화되거나 꿈꿀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밤에 꾸는 꿈은 정말 '잠자는 꿈꾸기'이고 영화야말로 '깨어있는 꿈꾸기' 그것인 거다.
이그조티시즘
... 그래서 1950년-60년대의 우리 가요에는 '이그조티시즘(exoticism)'을 주제로 한 가사들이 유난히 많다. '이그조티시즘'이란 '이국풍의 정서'를 의미하는 문학용어인데 19세기 중엽 유럽에서 낭만주의 운동이 한창일 때 크게 강조되었던 표현기법을 가리킨다. 그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은 동양에 대한 동경이 강했는데 동양중에서도 특히 중동의 관능적 분위기를 좋아했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영어로 번역되어 크게 히트한 것도 그때였고...
오래 살고 보기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보고 있다. 즉,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오래라도 살고 볼일이다.'라는 생각을 말이다. 오래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삶의 지혜는 요절한 천재가 젊었을 때 직관적으로 체득한 지혜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쌍수를 들고 반길 만큼 모처럼 마음에 드는 동감이다.
전영법
연극이론에서는 '전영법'이라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전에 미리 약간의 암시를 주는 구성기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복선의 원리'나 '우회의 원리'를 미리 알아두는 것은 고달픈 인생살이에 꽤나 도움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뭐든지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절대 안 되고, 항상 자기 암시에 의한 힘을 우선 비축해두고 나서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처세법인 것이다.
신념의 마술을 아는 양반이다. 목표를 향해서 정공법을 쓰지 말고 선회하라는 얘긴데 마음에 씨 뿌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핵심이리라.
표현의 자유
나는 '빵의 평등' 못지않게 '사랑의 평등' 역시 중요한 문제이고, 외형상의 민주화만이 아니라 진짜 '의식의 민주화'를 이룩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개혁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방적 사고'에 기초하는 '다양한 개성의 인정'과 '표현의 자유보장'없이는 이 사회의 갈등요인을 근본적으로 척결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조선조식 보수윤리야말로 독재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키는 원흉이기 때문에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라도 보수윤리를 척결할 필요가 있다.
억압과 착취가 횡행하는 이 사회에 에로티시즘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이라는 한 전남대생의 말에 그는 그 나름대로 투쟁하고 있다며 설득력 있는 얘기를 했다.
처녀성
여자의 처녀성을 중시하는 것은 종교적 금욕주의의 미망(迷妄)이고 남성적 에고이즘의 환상일 뿐이다.
... 인간에게 있어 '성'이란 것은 언제나 먹어야 하는 '밥'과도 같은 것이다.
... 우리나라 남자들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특히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 어떤 음식이든지 그저 '새것'이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음식을 잘 씹으며 음미할 시간도 없이 그저 꿀꺽 삼켜버리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역시 식량이 없어 지나치게 굶주렸던 과거시절의 유물일 수밖에 없다.
처녀성의 여부를 따지는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경멸하는 내겐 시원스러운 이야기 같았고 성을 '음식'에 비유하는 것이 흡사 '음식남녀'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절묘한 비유 같았다. 그리고 식욕의 시대 → 성욕 → 명예욕으로 우리의 욕구는 충족, 변천된다고 하는 말에도 공감이 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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