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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들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책후기 - 김상운 저

by monozuki 202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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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책후기

읽고 싶었던 책 리스트에 넣어뒀던 책인데

생각보다 빨리 입수해서

오늘 반나절에 걸쳐 다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20대 초반에 읽었던
같은 출판사의 존키호의 <마음으로 한다> 심화 편 

내지 한국 버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 책은 '마인드 파워'의 중요성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며
내게 마인드 컨트롤의 세계에 눈뜨게 해주었고 

한때 힘이 되어 주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이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았고 

평소 무의식, 잠재의식, 영감에 관심이 많고
긍정마인드를 고취시켜주는 책들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잘 맞는 책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거나 믿지않는 이들에겐
이 책이 '영혼이 어쩌네 우주가 어쩌네'를 

들먹거리는 황당무계한 책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생각은 에너지다.' '생각의 힘은 세다.'

라는 메시지를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과학적 실험을 근거로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역설하고 있다.
또,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찰자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진정한 명상에 이르는 길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를 관념적으로 '유체이탈'시켜야만 

나는 무無에 이를 수 있고,
나를 비워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며
삶이 넓고 깊고 풍성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초반은 과학적 실험을 근거로 한 

'마인드파워'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조금은 집착적으로 반복해서 

설명하는 심리서적 같다가
중반은 '왓칭'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자기 계발서인가 싶더니
후반은 나를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자는 명상서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또는 처세서로 생각하고 

집어든 사람들에겐 다소 당혹스럽고 

허탈해질 수 있는 전개라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하냐가 아닐까 싶다.
누구는 이 책을 읽고 완전 동의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전혀 동의할수 없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당신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만큼은 열어놓아야 한다.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머리도 열린다.
반면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관찰자 효과에 따라 머리도 닫혀버린다.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이 접근금지 상태가 된다. "

 

저자는 이 책에서 가능성을 닫으면

두뇌도 닫혀버린다고 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그저 저자가 하는 얘기가 범우주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퐝당스토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 책 또한 그저 종이뭉텅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어느 쪽을 취할 것인지는 독자 각자의 몫이리라.

 

 

책구절

단지 자신을 누구로 바라보느냐 하는
단순한 시각의 차이가
재능의 차이를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벌려놓다니,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자신을 음악가로 바라보는 아이는 
음악을 완전히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즉, 음악에 관한 한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일단 무의식에 저장된 정보는
의지만으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의지보다 무의식이 불가항력적으로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자 효과는 
무의식에 저장된 정보까지도 쉽게 바꿔놓는다.

 

이처럼 실험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물결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물결의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을, 
양자물리학자들은 '관찰자 효과'라고 부른다.

이것이 만물을 창조하는 
우주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다.

다시 말해 미립자는 눈에 안 보이는 물결로 
우주에 존재하다가 내가 어떤 의도를 품고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돌연 눈에 보이는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립자들로 구성된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긴가?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그 무한한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그 가능성을 진심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기도에 담긴 뜻은 일일이 우주에 기억되고 저장된다.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내가 남에게 입히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내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한 
가차 없이 언젠가 내게 돌아온다.

만일 내 생전에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세에, 혹은 후손들에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이미지가 선명해지면 생각도 선명해진다.
세계적인 천재들이 한결같이 
"난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생각한다."
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 만물을 구성하는 미립자들도 
의식의 표면에서 겉도는 얕은 생각이 아니라,

의식 저 밑바닥에 그려지는 
깊고 선명한 이미지를 읽고 변화한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바라볼수록,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 바라볼수록, 
그만큼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반면, 얕은 생각은 티끌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그럼 이렇게 우리 머릿속을 점령한
얕은 생각들은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방법은 뜻밖에도 너무나 간단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 덩어리들을 
상상 속의 스크린이나 백지에 투사시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면 바라보는 의도를 읽어내고 저절로 물러간다.
하지만 곧 또 다른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럼 또 바라보라. 또 사라진다.

... 더 손쉬운 방법도 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 덩어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지금 피어오르는 생각의 뿌리는 어디지?"
생각 덩어리의 뿌리를 찾아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바라보는 것이다.

그럼 결국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無에 이르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다음 생각이 피어오르는 걸 기다리면 
텅 빈 공간은 더욱 길게 지속된다.

"그런데 그 텅 빈 공간은 대체 뭐지?"
이런 호기심이 들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공간, 그건 바로 '나'다.
원래의 '나'는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텅 비어있다. 
원래부터 수다쟁이가 아니다.

'생각은 곧 나'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생각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피어오른다.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머릿속에서 온갖 잡념이 피어오르는데
억지로 투지를 불태우는 것은
지극히 비생산적이다.

말로 하는 생각(투지)으로 말로 하는 생각(잡념)을 
물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럴 땐 조용히 잡념이 
피어오르는 걸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젊음과 노화도 선택하는 것이다.
젊음에 관한 정보를
많이 입력하면 젊어지고,

노화에 관한 정보를 
많이 입력하면 늙어간다."

 

잠재의식에 새겨진 이미지는
의지만으로 지우기 힘들다.

이미지가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더 강한 다른 이미지로 밀어내야 한다.

 

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의 감정에 휘말려 들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럼 선명한 이미지 형성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나를 남이라고 상상하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이미지가 더 선명해진다.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를 
제3자의 눈으로 객관화하면 
우리 잠재의식은 이를 당연히 받아들여 믿게 되고,

이렇게 믿음의 강도가 높아지면 
분명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을 남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건
인생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데 매우 훌륭한 기술이죠.

노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도 더 많이 하게 되지요."

 

우리가 목표를 정해놓고 실행하지 못하는 건
실행과정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미리 그려 넣지 않기 때문이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바라보면 그대로 일어난다.

과정이 구체적일수록 이미지도 그만큼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 투지나 의지로 덮어버리거나
저항하려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억누를수록 더욱 거세게 일어나는 생각의 속성 때문이다.
덮어버리려거나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훨씬 낫다.

 

 "나는 무수한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 가운데
어떤 나를 선택할 것인가?"

진심으로 이렇게 마음을 먹고 선택하면 
그 선택이 바로 현실이 된다.

당신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만큼은 열어놓아야 한다.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머리도 열린다.
반면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관찰자 효과에 따라 머리도 닫혀버린다.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이 접근금지 상태가 된다.

 

 "제 첫인상을 보시고 실망하셨죠?
... 첫인상은 타고난 거라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끝인상만큼은 책임질 수 있습니다."
... 약점은 숨기려들면 오히려 더 커 보인다.
반면 스스로 드러내면 솔직해 보일뿐 아니라 
강점으로 둔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점을 보완해 주는 
관련된 장점을 언급해줘야 한다.

약점과 무관한 장점은 언급해 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지는 오래 남는다.
만일 당신이 사귀던 여성과 어쩔 수 없이
오랜 이별을 해야 한다면 헤어질 때 
'나에 대한 가장 좋은 추억을 딱 한 가지만 말해봐요."
라고 말하라.
그럼 그녀는 가장 좋은 추억으로 당신을 기억하게 된다."

 

"행복은 환경, 운, 머리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한다."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내 생각만 변했다.
생각을 돌리면 비참한 경험이 
가장 흥미로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영혼은 두뇌의 밖에 있다.
관찰자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넓게 바라볼수록 지능이 높아지는 것도,

지능이 우주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모두 완벽한 지능을 가진 영혼이 
두뇌밖의 우주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나와 단 한 번이라도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나도 모르게 나와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연을 맺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관찰자 효과를 설명할 때 언급했듯,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몽땅 우주에 기록된다.

 

예일대학의 로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몸뚱이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면 
모든 게 나 하나로 좁혀집니다.

나의 벽을 세우는 거죠. 
반면 나무 한 그루라도 키우면 벽이 열리게 됩니다."

'나'의 벽이 세워지면 
우주로부터 아무것도 흘러들어오지 못한다.

반면 벽이 허물어지면 
우주로부터 사랑과 지혜, 에너지가 가득 흘러나온다.

 

우리 의식의 표면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늘 뒤덮여있다.

주로 '나'와 관련된 생각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용히 바라보면 
그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무한한 공간, 무無가 드러난다.

그 공간은 생각들이 싹트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생각들이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

즉, 나는 늘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텅 빈 무한한 공간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의 말대로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런데 텅 빈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또 누구인가?

몸속의 '나'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가? 
그건 몸밖의 나이다.

몸밖에 있는 나도 텅 비어있다.
어떤 방법으로 보든, 진정한 나는 텅 비어있다.

 

능력의 크기는
단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결정짓는다.

내 모든 능력은 내 육신 속에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나는 우주만큼 무한한 존재'라고 바라보면 
능력도 무한하게 쏟아져 나온다.

단순한 시각의 차이로 인생이 갈린다.
육신과 영혼은 늘 숨바꼭질한다.
육신이 눈을 뜨면 영혼이 잠들고, 
영혼이 눈을 뜨면 육신이 잠든다.

그래서 돈과 권력, 명예 등 
육신의 욕망에 집착하면 영혼이 눈멀고,

영혼의 실체를 깨달으면 
그런 욕망에서 저절로 떨어진다.

동시에 두 가지로 바라볼 수는 없다. 
상보성의 원리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영혼에는 눈뜨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남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나를 남처럼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텅 빈 무한한 공간, 
우주에 퍼진 영혼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는 순간 
영혼은 저절로 눈뜨기 시작한다.

 

자신을 남의 눈으로 좀 더 깊이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자신의 묘비명을 써놓고 사는 것이다.
...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묘비명을 쓸 수 있는 건 누구인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영혼에 눈을 뜨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집착적 삶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본질이다.
나를 비우고 남에게 베풀면 영혼이 열린다.
하지만 영혼에 눈을 못 뜨고 살다 보니 
사랑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겨우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급하게 영혼을 찾고 사랑을 찾는다.

한 세상 다 살고 나서야 "내가 누구지?"
하고 두리번거린다.

 

정신분석가인 코헛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타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열등감이 심하고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절망하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니 
하나같이 어릴 때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부모가 없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상처를 받을 때 
상처받은 마음을 비춰주어 

바라보도록 하면 그 상처는 사라진다.
화날 때 화난 마음을 비춰주어 바라보도록 하면 
그 화는 사라진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필요하다.
어릴 땐 부모가 이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간다.

 

고통은 고통을 통해
영혼을 갈고닦으라는 우주의 신호다.

그래서 고통은 외면하려 들면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거꾸로 "이 고통을 통해 뭘 깨달을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
깊이 바라보면 
거짓말처럼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고, 
값진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들은
왓칭을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왓칭(WATCHING)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은 25년차 MBC기자이자 앵커인 김상운이 들려주는 내면세계 ‘왓칭’에 관한 이야기다. 만물이 사람의 생각을 읽고 변화하는 미립자고 구성되어 있다는 양자물리학의 ‘관찰자 효과’에 주목하고 인생의 모든 고민과 생각들을 살짝 바꾸어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들의 잇단 사망으로 마음의 병에 걸린 저자가 자신의 치유과정을 직접 들려주며 왓칭이란 무엇인지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의
저자
김상운
출판
정신세계사
출판일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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