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일본은 있다
저자: 서현섭
출판사: 고려원 (1994)
일본은 있다를 읽고
이책에서 작가가 하고픈 얘기는 우리나라가 오랜 역사에 근거한 문화적 정서적 우월감, 그리고 피해의식, 현실적 열등감이 섞여있는 대일의식에 있어서 이제는 감정적인 시각보다는 보편적, 객관적 시각을 회복하자. 그리고 비판으로 시작된 논의가 비난으로 이어지는 일의 반복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순환성을 감안, 그들이 개항, 패전, 경제대국의 전설을 이루기까지 일본의 생활방식, 처세를 통해 진일보하자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의 집착으로 일본을 경계하지만말고 미래의 안목으로 운명적 동반자임을 인정하며 협력체제를 구축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에서 보기에 한국과 일본은 일란성 쌍둥이라 보는 시각에서도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있는 일본이 가장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기에 발전의 모범케이스로서 취할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려야한다는 견해다. 지일(知日), 극일(克日)을 외치는 우리지만 여전히 감정적 반응의 차원을 넘지못하는 이상 그들의 선진국 반열에 끼게 되기까지의 세상살이를 일본의 역사속에서 짚어보며 냉철한 눈으로 그들을 인지하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극적반전의 역사속, 그들만의 특이한 생존법과 자기합리화에 능수능란한 현실적응의 기술들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일본은 있다'라는 것을!
그간 여러형태의 일본에 관한 얘기를 다룬 책들을 읽어왔지만 일본역사를 훑으며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으로 일본의 막강한 힘의 배경을 보여주고 그들의 속성을 설득력있게 얘기한 책은 드문듯하다. 대개가 문화적, 사회적 측면을 얘기했지 일본과 일본인의 본질에 접근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인것 같다. 그만큼 인상깊었으며 우리나라도 어서 개선해나가야한다는 각성을 가져다주었다. 저자는 비판적으로만 보고, 진정 객관적인 일본의 모습을 보지못하고 과거와같이 감정에 치우쳐 일본과의 외교를 해나간다면 일본의 우위에 서기는 힘들거라는 일본전문가적 의견을 내놓는다. 그리고 '지일(知日)'이라는 목적으로 출간된 상업적 이익추구와 감정적 만족추구에 다름아닌 책들을 보며 우리에게 정확한 일본에 대한 시각을 기르게하고자 저자는 펜을 든 만큼 날카롭고 냉정한 시각으로 우리에게 일본을 이야기한다. 언제 한번 기자의 눈으로 본 '일본은 없다'도 읽어보고 이 두책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뒤에도 찝찝함이 남는것은 단절적인 독서로 내용의 완전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안목이라지만 저자 역시 같은 민족이기에 으레 갖는 반일감정은 누구에게나 잔존하듯 작가의 문장에도 매운 맛이 있어서 다소 감정적 만족을 안겨줌은 인정해야한다. 그 매운 맛이 재치있게 표현되었다는 점은 내가 배워야할 점이기도 했다.
제1장 문명개화의 열풍
이 장에서는 일본의 쇄국과 개방을 역사속에서 살펴보며 그들이 지금의 대국이 되기까지 외국문물에 대한 수용, 모방 등을 통해 그들의 기질, 특질을 역사속에서 짚어나가고 있다. 또, 그 당시 일본의 문물수용을 위한 노력과 대비적으로 개방이 원천봉쇄된 우리의 쇄국을 비교하면서 일본의 이해를 돕고자했다. 탈아론, 난학(네덜란드 문화 등)의 열풍, 영학의 또다른 바람, 일본의 절대적 신인 천황의 신격화 과정, 포교가 힘든 일본교는 천황 아니면 자신의 조상을 믿는 사람들뿐! '서양콤플렉스'와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을 꿰뚫어보고 일본의 문명화는 아시아에 대해 양면의 칼날을 지닌 칼이 될것이라는 러시아출신 망명혁명가 레프메치니코프의 예언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제2장 일본, 일본인의 초상
일본 역사속 외교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인물 또는 지금의 일본을 만든 일본인의 독특한 기질 형성에 공헌한 일본인을 통해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고자한다. 과거에 대한 이유로 그들을 막연히 미워하기보다는 그들의 본받을 점들을 취할수있는 아량을 키우라는 이야기가 담겼다고 생각된다.
제3장 한국과 일본, 그 애증의 실체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외교사를 들추면서 우리에게 깊은 증오를 심어준 일본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잘난 점과 우리의 못난 점, 안타까운 점을 얘기하며 그 애증을 밝히려한다. 우리민족의 문화는 높이 평가하나 민족을 멸시하고 싶었던 일본의 우월의식, 일본은 왜놈이라해서 배울 점조차 마다했던 우리의 뿌리깊은 중화사상이 어쩌면 애증의 모체였는지 모른다.
제4장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개인간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분의 상하에 극히 민감한 일본인은 특히 명치시대의 일본의 지도자들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각 국가의 서열을 매기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 (중략) 따라서 수직사회에 있어서 개인이 신분질서를 상승시키려는 입신출세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명치정부는 서양화 즉 문명화를 달성하여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데 절치부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콤플렉스가 강하다. 상대방에 비하여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외부에 대해 굴종적이라고 할만큼 저자세를 견지한다. 반대로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같은 것을 느낄 경우에는 빠르게 공격적인 자세로 변신한다.
위와 같은 특질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한 청일전쟁에서다. 이민족을 지배하면서 서양문명의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판단, 미개한 나라로 치부해서 경멸과 멸시에 이어 결국 침략까지 자행하게 된다. 러일전쟁의 승리 또한 탈아입구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고 저자 서현섭은 얘기한다. (※주: 탈아입구-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뜻) 또, 일본의 서구문물의 이른 수용과 외교적 생색내기로 서구들이 일본에 대한 능력, 호감을 갖게되는 반면 국제외교엔 젬병이었던 우리나라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일본외교에 대한 서구의 평가와 반비례로 조선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굳어지게 된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전문지식인 계급은 중인이었다. 중인들은 법률학, 외국어, 천문학 등 소위 잡학이라 불리우는 천덕꾸러기 학문을 연마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자들로서 사회적 정치적 신분이 낮은 계층이었다. 국가권력 주변에 있는 엘리트들은 양반 출신의 사대부들이나 이들은 누구보다도 화이사상에 푹 젖어있었으며 일정수준이상의 지식을 구비한 전문인은 될수없었다. 전문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사대부들이 평소에 경시하던 중인들에게나 기대되는 잡기에 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따라서 조선의 지배적 식자들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선호할수밖에 없었고 잡학에 능하다는 평가는 결코 명예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위 얘기에서 지금껏 우리에게 배여있는 적당주의 또는 대강주의의 그 정신적 근간을 엿볼수있다. 권위 또는 사대주의적 사상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압도하는 뿌리뽑아야할 충치같은 것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일찍이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일본의 사절을 앞에 두고 설파한 국제법보다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나 국제법과 무력을 적절히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해야 외교적 목적을 용이하게 달성할수있다는 가르침을 뼈에 새기고 있었다.
상해임시정부가 각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상태에서 선전포고를 하고 항일투쟁을 계속했더라면 한국정부는 연합국의 대일평화조약 서명국의 일원으로서 참가할수 있었을것이다. (중략) 가설이지만 연합국의 자격을 획득하였더라면 전승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재일교포문제, 문화재 반환문제, 한일정상화교섭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독립을 위해 부단히 투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손으로 얻은 광복이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의 산물이라는 일부 일본 지식인들의 모욕적인 지적은 받지 않을수도 있었을터이다. 세계외교사를 보더라도 외교라는 것은 공기와 같은 것으로 평소에는 그 존재가치를 제대로 인식못하나 국가적 위기에 처하면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전쟁에서 잃은 것을 외교에서 찾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약육강식의 도래를 인지못하고 조선의 국권상실에도 국제법에 거는 기대가 컸던 우리나라는 이내 국제법에 대한 환멸론을 펼치게되어 더욱 국제외교에서 도태되고마는 결과를 초래하고 우물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하지못한다. 그리하여 위 얘기와 같이 우리는 일본의 열등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세계물정을 잘 모르는 순둥이인것만같아 김영삼대통령의 '국제화', '세계화' 운운이 얼마만한 실효를 가져올것이며 실천이 될지 내겐 아직 공허하게만 들린다.
섬에서 살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섬나라 근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좋은 방향으로 개조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일본인들은 어찌할수없는 왜소성이라는 숙명을 완벽주의로 극복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 쏟았다. 왜소한 사상이나 제품에 일본적인 혼을 불어넣어 천하제일이 되는 길을 이상으로 삼았다. 일본 사람들의 학문하는 태도를 보면 지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학문이라고 하는 작은 조약돌을 하나 건져올려 그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 갈고 닦아 구슬로 만드는것같다. 일종의 편집광적 완벽주의를 추구한다...일본인들은 이같은 완벽주의와 장인정신에 의해 외래문화를 성공적으로 흡수할수 있었다.
일본은 일찌기 자신들의 '섬나라'라는 약점을 도약, 발전의 발판으로 삼아 콤플렉스를 잘 극복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들의 장인정신, 완벽주의는 분명 배워야할 점임에는 틀림없다. 이후의 얘기는 일본에게 바라는 재일한국인의 처우개선, 한일공동의 협력의 필요성(아시아태평양시대가 21세기의 주역이 될진대 가까운 나라라는 운명공동체를 부인할수없기에 과거지사의 인정, 사과후 협력해서 21세기를 이끌어가야한다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본의 기술혁신은 외래의 기술을 개선한 후발적 기술을 그 특징으로 하고있다. 모방은 발전의 불가피한 과정인지 모르겠으나 창조적 사고를 질식하게할 가능성도 있는 위험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방(mimesis)하기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개발의 축적이 있어야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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