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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들

세라복을 입은 연필 -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by monozuki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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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번째 수필집인 세라복을 입은 연필은 1편인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단순히 재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한 면도 많았고 좀더 하루키의 문학세계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왜 일본에서 그토록 인기있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그의 촌철살인적인 문장, 일본인답지않은 사고, 기존관념을 뛰어넘는 기발함, 풍부한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의 이외수'라 해도 될만큼 문장의 재치와 언어의 멋을 아는 사람같았습니다. 그리고 번역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건 번역가의 역할 또한 컸다고 볼수있겠습니다. 번역가 김난주의 언어적 감각과 문장력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연이어 수필집을 읽다보니 그의 소설도 궁금해집니다. 


책속의 인상깊은 구절과 나의 짧은 코멘트

언어는 공기와 비슷한 것

나는 언어는 공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토지에나 그곳만의 공기가 있고, 그 공기에 맞는 언어가 있어, 그것을 거역하기란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 먼저 악센트가 바뀌고 그러고는 어휘가 바뀐다. 이 순서가 반대가 되면 언어는 쉽사리 마스터할수없다. 어휘란 이성적인 것이고 악센트는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인인 나로서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서울말을 쓰다가도 고향에 내려가거나 가족 또는 고향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되면 절로 나오는게 사투리다. 

 

꾸물꾸물 나아가다

나는 무슨 일이든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물꾸물 추진해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엔가 도달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패도 많이 한다. 그러나 한번 그게 몸에 배고나면 어지간해서는 흔들림이 없다.

나역시 어설픈 시작으로 이래저래 헤매다 내 방식으로 굳혀가는데 시간이 걸리고 경험이 필요하다. 나랑 비슷한거같아 공감된다.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가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증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써야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일것이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건 체력이고 체력이 있어야 집중력을 발휘할수있고 노력도 할수있는 것이다.  

 

키친테이블노블

아마도 크레이그 토마스였다고 생각되는데 그가 어떤 소설의 후기에 '대부분의 처녀작은 한밤중의 부엌테이블위에서 씌여진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요컨대 처음부터 전업작가라는 것은 없으니까 모두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사람들이 잠든 후의 잠잠한 부엌테이블에서 갉작갉작 소설을 쓰는 것이다.

키친테이블노블이란 자신의 식탁위에서 긁적이는 소설을 말한다. 대표적인 키친테이블 라이터로 해리포터의 조앤롤링이 떠오른다. 소설이란 작정하고 소설가가 되려고 쓴다기보다는 바쁜 일상속에서도 매일같이 자신의 꿈에 투자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어슴푸레한 어둠, 희끗희끗한 어둠

...이렇게나 엄청난 양의 비슷비슷한 잡지가 서점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지금, 내게는 선택의 여지, 그 자체의 실태를 파악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대체 그 누가 오후 네시반의 어슴푸레한 어둠과 오후 네시 삼십오분의 희끗희끗한 어둠을 구별할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으면서도 독특한 표현으로 문장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그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잠이란 과즙 풍부한 과일

내게 있어 잠이란, 신선한 과즙이 듬뿍 들어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과일과 비슷하다. 이불속에 들어가 '잘 먹겠습니다-'하는 기분으로 눈을 가목 그 잠의 과즙을 쪽쪽 빨다가 다 빨아먹고나서야 눈이 떠지는 셈이다...될수있는한 그런 꿈과는 관계하지않고 잠의 과즙을 무아지경으로 쪽쪽 빨며 자고 싶다.

'잠을 자면 행복하고 너무 편하다. 하루의 고단을 잊게하는 안식처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말것을 그는 이 '잠'을 사랑한 나머지 아주 맛있게 둔갑시켰다. 하루키는 정말 못말리는 작가다.

 

독서용 복제인간

<블레이드 러너>는 아니지만 나역시 '독서용 복제인간'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가 책을 왕창왕창 읽으면서 '주인 나으리, 이건 아주 좋습니다. 꼭 읽어야만해요.'라든가 '나으리, 이건 읽을 필요없습니다.'하고 다이제스트식으로 설명해주면 무척 편리할것같다. (이하 생략)

앗! 누가 이처럼 기발하면서도 허황스럽지않은 생각을 할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은 책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