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필집은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인기작가의 프리미엄이 작용하여 읽게 된 책입니다. 신문연재(일간 아르바이트 뉴스) 칼럼인 만큼 단편적으로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소탈하게 또는 번뜩이는 문학적 재치로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점은 다분히 일상적인 얘기이지만 그가 글로 표현하는 순간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수필을 읽는 재미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때론 사고의 대반전을 보이는 창조적 감각의 작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수필을 쓴다면 이 사람처럼 신문연재의 특수를 감안, 신문독자를 끌어들일 흡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일본-가깝고도 먼 나라의 정서를 알수있었던-이 그리 낯선 세계가 아닌 이상 서양의 수필가들의 관념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인생의 고찰을 다루는 것과 달리 일상속에서의 느낌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다뤘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의 수필집 2탄도 어서빨리 읽고 싶어서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와의 대담
무엇보다도 책 말미에 '안자이 미즈마루(이 책의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와의 대담에서 솔직하게 얘기한 결혼, 연애 얘기중 '생활에서의 긴장감'을 잃지말아야겠다는 그의 생각과 행동이 한층 호감을 주어 산뜻한 마무리가 된 느낌입니다.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
결코 가식적이지 않고 영화, 책, 음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의 소산이 이 책에 담겨져있어서 그걸 체득하는데만해도 나에겐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수필이 단지 일상사의 느낌, 체험에만 국한되었다면 여느 수필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문학적 감각도 뛰어나고 그의 풍부한 지식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잡학다식하달까, 박학다식하달까.
남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색다른 관점으로 볼줄아는 눈이 작가의 재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듭니다.
책속으로
때론 인생이란 커피 한잔이 안겨다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차드 브로티간의 작품 어딘가에 씌어있다. 커피를 다룬 글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흡족스럽다.
내가 어째서 이 별볼일없는 문장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색깔의 조화가 아름답기 때문이다...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며 퍼뜩퍼뜩 떠오르는 것이 그런 색깔들의 어울림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다할 의미도 없는 그런 문장이 언제까지고 머리 한구석에 들러붙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문장의 미덕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를테면 퍼짐새가 있는 문장말입니다. 가령 소설같은걸 쓸때는, 이런 퍼짐새가 좋은 한줄로 시작하면, 얘기가 점점 확대되어간다. 반대로 아무리 공을 들인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게 닫힌 문장이면 얘기는 거기에서 그만 멈춰지고 만다.
하루키의 문장을 쓰는 법
장래 글을 써서 연명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종종 '문장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문장을 쓰는 비결은 문장을 쓰지않는 것이다. 라고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테지만, 요컨대 '지나치게 쓰지말라'는 뜻이다. 문장이란 '자, 이제 쓰자'고 해서 마음대로 써지는게 아니다. 우선 '무엇을 쓸것인가'하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것인가'하는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발견되는가하면, 그것은 천재가 아닌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디엔가 이미 있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려와 적당히 헤쳐나가게된다. 이미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지기 쉬운 법이라서 재주가 많은 사람 같으면 주변으로부터 '와, 제법인데'라는 등의 소리를 심심찮게 듣게된다. 당사자도 그런 기분에 젖는다. 좀더 칭찬을 듣고자하여 그런 식으로 해서 영 그르친 사람들을 난 몇명이고 보았다. 분명 문장이란 많이 쓰면 능숙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자신속에 분명한 방향감각이 없는한, 그 능숙함의 대부분은 '재주'로 끝나고만다.
그렇다면 그런 방향감각은 어떻게 하면 체득할수 있을까? 요는 문장 운운은 나중일이고, 어찌됐든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한차례 그런 일들을 다 겪어보고 '쳇 뭐야, 이런 정도라면 문장따위 일부러 쓸 필요도 없잖아'라고 생각할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행운이고, '그래도 아직 쓰고 싶다'라고 생각되면-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제쳐놓고-자기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을 쓸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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