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소설 <동물농장>은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인간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고전 명작이고 유명한 책인 줄 알았으나 읽어볼 생각을 안하다가 최근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한번 읽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몰입하여 읽은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전 '조지오웰'이란 작가는 세상의 돌아가는 흐름을 꿰뚫고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게 대단했다. 그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은 '모든 인간군상의 집합체'였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소설로 옮겨놨다고 해야되나. 특히, 독재정권이 대중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표현했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내부자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서울의 봄> 등이 떠올랐는데 그동안 각종 영화, 드라마 등에서 본 독재와 권력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 책이 바이블 역할을 한건 아닌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적인, 생명의 위협을 당했을때 나오는 인간군상을 그렸다면 <동물농장>은 내가 발전하고 이 세상이 발전해서 다 같이 잘 사는 유토피아적인 관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이 세상이 더 나아질거라 기대하는 것은 결국 노예처럼 부려지는 사람들만 하는 생각이었다!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무엇인지, 결국 그들의 말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줄거리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우화 형식으로 쓰인 정치적 풍자소설이라고 한다. (영국의 한 농장에서 일어나는 동물들의 혁명을 통해 러시아 혁명과 그 후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
혁명의 시작:
매너 농장의 주인 존스 씨는 무능하고 술에 취해 있다. 동물들은 그의 학대와 착취에 불만을 품는다. 어느 날, 나이든 돼지인 메이저 영감이 동물들에게 인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자고 설득한다. 그는 동물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꾼다.
반란과 성공:
메이저 영감이 죽은 후, 나폴레옹과 스노볼이라는 두 젊은 돼지가 반란을 주도한다. 동물들은 성공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존스 씨를 농장에서 쫓아내고, 농장을 동물농장으로 이름을 바꾼다.
농장의 변화:
동물들은 "동물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바탕으로 농장을 운영한다. 이 이념은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인간은 적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스노볼은 풍차 건설을 제안하며, 농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스노볼과 대립하게 되고, 결국 개들을 이용해 스노볼을 쫓아낸다.
나폴레옹의 독재:
나폴레옹은 점점 독재자가 되어가며, 동물들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돼지들은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하고, 다른 동물들은 착취당한다. 나폴레옹은 인간들과 거래를 하고, 동물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와는 점점 멀어져 간다.
결말:
돼지들은 점점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동물들은 자신들이 혁명을 일으킨 이유를 잊어버린다. 결국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하며, 동물들은 절망에 빠진다.
등장인물 & 명대사
어떤 집단에 가든 꼭 찬반으로 나뉘기 마련인데 동물농장에도 스노볼과 나폴레옹으로 파가 나뉜다. 마치 정치판을 보는듯하다. 실제로 풍차건설을 하자는 나폴레옹과 동물농장의 시설 업그레이드로 정책이 갈린다.
권력에 눈이 먼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쫓아내고 농장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규율을 강조하며 동물들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한다. 나폴레옹은 동물들에게 금지된 일곱 가지 계명을 조금씩 교묘히 바꿔가며 그들 편한 방식대로 동물농장을 이끌어간다. 글씨를 못 읽는 동물들이 많아서 그게 가능했다.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이 나온다. 무지몽매한 대중은 권력층을 더욱 타락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농장 습격에서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이해할수있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나폴레옹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잔인하게 처형당하고 이를 본 동물들은 더욱 큰 공포를 느끼며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집단최면을 걸듯 <영국의 동물들>의 노래와 저 격언과 일곱계명으로 대중들은 스스로 돼지들의 노예를 자처하는 꼴이 돼버린다. 동물들은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지만 삶은 나아지지않는다. 날이 갈수록 나폴레옹의 신격화는 심해지고 나폴레옹은 교활해진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세운 풍차가 인간들에게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격렬히 싸웠다. 하지만 결국 풍차는 사라져 버렸다. 동물들의 노력과 헌신 따위보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과업을 치하하기 바빴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늘 일찍 일어나 더 많이, 성실히 일한 말 복서의 죽음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젊을 때 부지런히 일해서 나이 들면 은퇴해서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질 못했다. 개같이 일하고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처절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그러고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왜곡된 채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복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쁜 삶은 아닐게다. 그는 동물농장 안에서 자기 소신을 지키며 살았다. 죽을 때까지 나 왜 이렇게 힘들지? 삶이 나아지지 않지? 하는 고민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다른 걸 욕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돼지들이 보기에는 그가 영웅이지만 농장 안에서 다 알지만 입 다물고 있는 누군가에겐 그가 가장 불쌍한 노예로 보일 거다.
네 발도 좋고, 두 발은 더욱 좋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은 그들의 통치방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격언과 계명을 바꿔서 대중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네 발로 걸어다녀야할 나폴레옹이 두 발로 걷는 거였다. 동물이 동물다워야 하건만 어느새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흉내를 내기 시작한 거다.
창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를 한번 보고 인간을 바라보았고, 다시 인간을 한번 보고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이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폴레옹은 히틀러 + 괴벨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절대악이라 할 수도 없겠다. 이것이 어쩌면 권력의 구조가 아닐까. 나폴레옹도 처음엔 그저 착취하는 인간들을 몰아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몰아내고 자기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착취하는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게 된 거다. 아니 그건 흉내내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지게 되고 높은 위치에 있게 됐는데, 어떤 누구도 자기에게 지적이나 경쟁, 견제를 하지 않으면 누구나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 동물농장에 있다면...
그중에서 난 어떤 동물(사람)이고
어떤 동물(사람)이 되고 싶을까.
뭘 하면 난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길 벗어나면 불행할까 행복할까...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랑
나의 능력치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괴로움이 엄청 클지도 모른다.
이 괴로움을 성장으로 볼건지
아님 또 다른 괴로움에 눈뜬 사람이 될 것인가.
생각해볼 꺼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끝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199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민주투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기에.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도시의 사랑법> 원작소설 후기_박상영 작가 (7) | 2024.10.01 |
---|---|
현명한 반도체 투자 - 우황제 저 (0) | 2024.03.24 |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5) | 2024.03.15 |
긴긴밤 [어른을 위한 동화] - 루리 저 (0) | 2024.03.07 |
유령의 마음으로 - 임선우 저 (2) | 2024.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