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 박'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다 챙겨보는 편인데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받고 믿고 보는 작가 정서경의 시나리오에, 출연배우가 무려 탕웨이와 박해일이다! 당연히! 반드시! 봐줘야 할 영화라 하겠다.
게다가 수사멜로극이라는 장르의 신선함도 있고 살인사건을 풀어가면서 진행되는 남녀의 심리변화도 흥미로웠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탕웨이와 박해일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되고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의심'에 포커스를 맞춰서 보면 될듯하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스토리 자체만을 봐도 좋지만 탕웨이, 박해일 두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고 카메라워킹이나 미장센을 숨은 그림찾기하듯 찾아보는 재미를 즐겨도 좋을 거 같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n차 관람이 필수라고 하나보다. 많이 보는 만큼 많이 알게 될 테니깐.
♧ 스포주의 ♧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맡은 강력계 형사 `해준`(박해일)과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인 아내 `서래`(탕웨이). 이 두 사람이 피의자와 형사로 만나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준`(박해일)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탕웨이)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간다. 그녀 또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해준'(박해일)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진다. 전반부에는 해준(박해일)의 사랑을 그렸고 후반부에는 서래(탕웨이)의 사랑을 그렸다. 그래서 영화배경도 부산에서 이포로, 산에서 바다로, 남주의 시선에서 여주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생각해 보면 두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한날한시에 좋아할 수는 없겠지. 2개의 살인사건을 통해 전반부에 박해일은 탕웨이를 감싸주고 후반부에 탕웨이는 박해일을 감싸주며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다.
"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지만
잉크처럼 퍼지는 사람도 있어. "
영화 속 박해일의 대사처럼 슬픔이 그러하듯 사랑 또한 서서히...천천히...빠져드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박해일의 사랑이 파도 같았다면 탕웨이의 사랑은 잉크 같았던...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건 미스터리 관점에서 봤을 때 묘한 매력의 탕웨이 캐릭터가 압도적이라 범인인지 아닌지 정말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 멜로 관점에서 봤을 때 의심과 관심을 오가며 연민인지 사랑인지 모를 경계선에서 서로 엇갈리는 감정을 잘 그렸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수사와 멜로를 어느 하나 치우침 없이 밸런스 있게 잘 연출한 거 같다.
영화배경이 산과 바다인 만큼 영화 속 '산'과 '바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영화를 본다면 재미가 더 배가될 듯싶다. 내가 생각하는 '산'은 박해일 같아서 전반부에 그는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잃고 붕괴하게 된다. 또, '바다'는 탕웨이 같아서 후반부에 그녀는 파도(박해일?)에 휩쓸려 바닷속에 잠기게 된다. 그들의 사랑과도 같았던 모래산도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
앞서 미장센 얘길 했었는데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모든 설정과 소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영화에 쓰인 다양한 아이템들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영화의 재미를 확장시켜 줄 듯하다. 나 역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궁금했던 몇 가지가 있어서 박찬욱 감독의 기사 서칭을 해봤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이 인공눈물을 넣는 신이 자주 나온다. 이건 눈을 맑게 함으로써 현실을 똑바로 보고 바르게 살아가라는 의미란다. 그리고, 영화 끝부분에서 박해일이 신발끈을 질끈 묶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래(탕웨이)를 찾겠다는 해준(박해일)의 결심을, 넥타이를 푸는 건 경찰로서의 해준(박해일)이 아니라 서래(탕웨이)를 사랑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산 같기도 바다같기도 파도같기도 한...
안개...그 모호함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많은 상징과 은유가 있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정훈희, 송창식의 <안개>다.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여러 번 나오기도 하는데 '안개'야말로 '모호함'을 나타내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얘기해 주는 듯하다. 일단 영화가 시작할 때 제작사 '모호필름' 타이틀이 떠서 인상깊었는데...모호한 감정이 오가는 그들의 사랑은 불분명한 안개 같다. 박찬욱 감독이 위 사진 속 벽지에 모호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림이 산처럼, 바다처럼,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색깔 또한 초록 같기도 파랑 같기도 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은 과연 박찬욱 감독 작품다웠다. (발상이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웠음) 서래(탕웨이)는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모래를 파고 그 안에서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는 죽음을 택한다.
" 나는 당신의 미제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
서래(탕웨이)의 이 대사처럼 그녀의 바람은 자신의 죽음이 미제사건이 되어 해준(박해일)이 자신을 평생 생각하길 바랐을 거다. 그것이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표현이기도 했을 테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섬뜩하고 무섭기도 하다. ㅎㄷㄷ)
이제 배우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탕웨이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역시나 그 기대에 부응하듯 탕웨이는 역할이 착붙이다. 뭣보다도 탕웨이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에 깜놀했다. 서투른 한국어와 능숙한 중국어 줄타기를 잘해서 그녀가 범인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는 캐릭터에 한몫한 거 같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다양한 조연, 특별출연(카메오)이 돋보인다. 아무래도 김신영의 출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듯. 개그우먼의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영화의 흐름을 깨는 건 아닌지... 내가 보기엔 영화만큼이나 애매모호하게 느껴졌다. 좀 아닌 것도 같다가 괜찮은 것도 같다가...
그 외, 고경표와 박해일의 케미가 좋았고 이정현, 박정민, 이학주 등도 괜찮았지만 벌크업한 몸매에 비열함을 장착한 박용우의 연기가 임팩트 있었다. 두 번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나온 서현우가 단연 신스틸러였다고 본다.
◈ 한줄평 ◈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 <은교> 박해일 & 김고은 & 김무열 (tistory.com)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 탕웨이 & 현빈 주연 (tistory.com)
'Movie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_황정민, 유해진 (1) | 2024.05.22 |
---|---|
박보검, 공유의 영화 <서복> 후기 (0) | 2024.05.21 |
최우식 주연,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 후기 (0) | 2024.05.15 |
일본영화 <여자들은 두번 논다>: 요시다 슈이치 소설 원작 (0) | 2024.05.13 |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영화 <브로커> 후기 (0) | 202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