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민규의 <더블>은
신묘년에 접어들어
읽은 첫 번째 소설이다.
박민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
그의 이번 소설이 참 반가웠다.
단편소설집이 한 권도 아니고 두 권이란다.
완전 원플러스원 모드라
설레는 마음으로 그 첫 권을 읽었는데
읽어가면서 ??하는 기분이 되었다.
9편의 단편 중 3편을 읽기를 포기했다.
뭐랄까... 너무나도 작가만이 아는 세계를 그려
공감하기 어려웠다.
단편에 등장하는 낯선 외국배경과
외국인 또는 국적불명의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소설을 읽어가면서 남은 페이지수를
자꾸만 세어보게 되거나
읽으면서 딴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건
결코 좋은 글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인내력을 테스트하듯
완독하려했으나 집중력을 상실하고
포기한 단편이 발생케 되는 불상사를 낳았다.
그리고, 읽으면서 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이기호 내지 성석제식 단편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블 side A면
어쨌거나 더블 side A면을 소화해냈고
대략적인 감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내가 좋아하는 박민규 스타일은
<축구도 잘해요>라 하겠다.
자신의 전생이 마릴린 몬로라는 데서
자전적 소설을 만들어낸 이야기가
참신하고 발랄해서 좋았다.
책의 서두에 다감(多感)하라는 저자의 말처럼
섬세한 묘사를 하나하나 느끼듯 읽어나간
<근처>는 암에 걸린 중년남자가
고향으로 가 동창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거기서 순임이라는 동창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인데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게 하고
그러면서 마지막에 보여준 반전은
씁쓸함을 자아내게 했다.
<누런 강 배 한 척> 역시 노년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치매에 걸린 아내와
자살을 감행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얘기지만
섹슈얼한 내용도 함께 담고 있는 단편이다.
<굿바이, 제플린>은
비행풍선을 좇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건데
나름 재밌었다.
하지만 작가가 무슨 얘길 하고 싶어 하는지는
감이 잘 안 잡히는.. 뭐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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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구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함이 아니다.
자식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배신감도 아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 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더블 side B면
더블 B면까지 모두 다 읽었다!
확실히 B면이 재밌었다.
여기서 가장 재밌었던 4편을 고르라면
<별>, <아치>, <비치보이스>, <낮잠>이 될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4편은 또 읽어보고 싶다.
또,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도
실려있었지만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이미 읽었기에
이번엔 읽기를 생략했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곳곳에 번뜩이는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 하겠다.
낮잠
더블 B의 첫 장을 장식하는 단편이다.
뛰어난 묘사력과 감정표현으로
드라마틱한 내용의 단편이었다.
노년의 삶을 간접체험하는 기분도 들고,
요양원을 배경으로 치매에 걸린
자신의 첫사랑을 그곳에서 만나며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늘그막에 보여주는 노인네들의 삼각관계가
뭐랄까... 우습지만 슬픈... 그런 얘기였다.
그리고, 주인공의 심정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루디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래스카 대지진에서도 살아남은 '신의 아이'가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살인범이라는 아이러니가 인상적이었다.
루디에게 붙들려 생과 사를 오가는 장면을
생생하고도 실감 있게 잘 묘사했다.
四龍
이 작품은 다른 문학상 선집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 편의 무협소설 같은 느낌의 작품으로,
그 속에 녹아난 풍자가 인상적이었다.
비치보이스
<낮잠> 다음으로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마치 크라잉넛처럼 동반입대를 앞둔
젊은 네 명의 청춘이야기로
'젊음'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방학과 학원의 반복굴레를 사는
젊은이의 세태도 잘 녹아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아스피린
UFO가 아닌 아스피린이
어느 날 한국의 상공에 떠있게 된다는
황당무계한 스토리의 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일을 하는
회사원의 애환을 그렸다고나 해야 할까?
아마도 작가는 현대의 재난이란
바깥세상엔 희한한 일이 터져도
그와 무관하게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무감해진 현대인의 세태를 꼬집고 싶었던 거 같다.
별
나쁜 여자를 만나 모든 걸 털린 후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우연찮게 자신을 알거지로 만든 그 여자를
손님으로 태우면서 일어나게 되는 일을
감정을 따라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상황설정이 재밌고
읽는 내내 꽤나 공감이 되어 재밌게 읽었다.
아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강다리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전담으로 맡는 한 경찰관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때 살기 위해
한강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사진이
너무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 옛날 누군가에게는 살기 위해
오르던 다리였다면
지금은 누군가에게 죽기 위해
오르는 다리가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재밌다.
한강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들을 위해
위 사진을 자살방지용으로 쓰면 어떨까...ㅋ
슬(膝)
BC17000년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라는데
그닥 재미는 없었지만
절대적 고독이라든가
책임감을 안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큼은
문장에서 잘 느껴져 왔다.
기억에 남는 문구
할 일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허무함,
길고, 시들고, 말라가는 시간의 악취...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수십 개의 유선 채널이 들어와 있지만
정작 볼만한 것은 많지가 않다.
수십 년을 일하고 일구어도
정작 남은 게 없는 인생처럼.
지난 세월을 돌이키는 일은
어둠 속에서 무성영화를 보는 일과
매우도 닮아있었다.
대사는 사라져도 줄거리는 남아있다.
여기... 내 가슴속에,
모든 게 사라진 삶이라지만
옛날은 남아있다.
별이 인간을 헤아릴 순 없으니까.
오로지 인간이, 별을 헤아릴 뿐이니까.
마음속의 도자기 하나가
풍비박산 난 느낌이다.
별은 멀리 있어야 한다.
인간의 손을 탈수록
그 빛을 잃기 때문이다.
따뜻하다.
지나온 모든 날들이...
옛날, 이란 사진 한 장으로
인화될듯한 봄볕이다.
홀 가득 함성과 꺼내든 회칼들이
밤바다에 떠오른 학꽁치 떼처럼
은은하게 파닥거렸다.
... 높은 하늘과 바닐라스러운 구름,
또 원경의 풍부한 마린블루를 쳐다보며...
바로 金과 에릭의 옆에 있었는데,
허리 근처의 수온이
갑자기 확 상승했었기 때문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온수가 나올 리도 없고 해서,
나는 열심히 친구들의 곁을 벗어났다.
더할 나위 없이 푸른, 5월의,
마치 윈도우즈의 바탕화면과도 같은
완벽한 하늘 위에 그것은 떠 있었다.
- 저자
- 박민규
- 출판
- 창비
- 출판일
- 20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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