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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소설 풍수 상중하 - 김종록 저 (1)

by monozuki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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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소설 풍수 상중하

저자: 김종록

출판사: 중앙일보사 (1994)

 

소설 풍수 김종록
소설 풍수 상중하

소설 풍수 상권

소설 <풍수>는 진태을로부터 정득량이 풍수학을 전수받는 과정이 담겨있다. 중하권으로의 연결구조는 이 두사람이 길을 떠나 직접 산세를 접하고 거기서 체험으로 풍수를 깨우치며 독자에게도 몰랐던 풍수의 힘과 신기를 전해줄것으로 보아진다. 다소 전개가 짜임새있지못하고 왔다갔다하는 것같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었다. 

참고가 될만한 풍수지식을 모아봤다.

 

책속으로

▷삼구부동총: 3월과 9월에는 개장을 않는다.

 

▷묘바람의 종류

충렴: 무덤속에 뱀이나 벌레가 들어감 → 중풍, 정신질환

목렴: 나무뿌리 → 신경통, 농창

(토질이 나쁠 경우, 자갈땅)

명당자리엔 침투하지않는다.

수렴: 물이 든다.

화렴: 불에 탄것

풍렴: 바람이 듦  → 자손 흉사당함

 

▷남산은 누에형상. 누에는 뽕을 먹어야 자랄수있고 고치를 틀죠.

그래서 누에모양의 이 산앞의 저들을 잠실이라 부르고 뽕나무를 심게한것이다.

 

▷고사리는 양지바른 곳에 나는 산나물. 고로 묘자리와 상관이 있다.

 

▷우리나라 태조산 백두산은 영산(靈山)이다.

 

▷정원을 꾸밀때도 가리는게 많다. 가령 크게 자라는 나무를 심으면 나중에 베어낼때 근심이 생긴다.

집주위의 큰나무에는 목신이 깃들이기때문이다.. 등나무 따위의 비틀어지는 나무도 꺼린다.

집안일이 뒤틀리기 쉬운 탓이다. 석류나무나 화초따위가 적당하다.

마당에 못을 파거나 돌을 깔면 크게 흉하다.

 

▷봉분을 뒤에서봐서 왼쪽이 높으면 남자, 오른쪽이 높으면 여자다.

 

우리나라 태조산 백두산은 영산(靈山)이다.

물은 위에 있어서 밑으로 내려가려하고 불은 밑에 있어서 위로 올라가려하니
음양의 기가 융화되어 만사가 순조롭게 된다.
태조산이 이처럼 영험스러우니 이 땅은 그 어느 나라땅보다 풍수의 영향을 받게된다.

 

일제의 3가지 풍수침략

1. 도로나 철도공사로 혈이 맺히는 부위를 잘라냄.
2. 공동묘지제도로 명당을 찾아 조상의 뼈를 묻는 행위를 금지시켜 인물이 나오지못하게함.
3. 쇠말뚝박기

 

▷그는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고 산사태가 일어나게되자 뿌리가 억세게 뻗치는 아카시아나무를 대량공급하여 묘지 사이사이에 심도록한다. 땅속 깊은데까지 뿌리를 뻗은 아카시아는 관속까지도 능히 파고든다. 목렴으로 나무뿌리가 시신을 덮게되면 그 후손은 화를 면치못한다.

 

▷부장지: 동산(나무나 풀이 없어 밋밋한 산), 단산(용이 오다가 뚝 끊긴 산),

괴산(지맥이 머물지않고 지나가는 산), 독산(홀로 서있어 생기를 받을수없는 산)

일제가 지정해준 공동묘지는 대부분 이렇게 묘를 쓸수없는 곳이었다.

 


소설 풍수 중권

 

이번 권은 본격적인 풍수의 세계를 짚어보는 내용으로 가까이는 선산의 도리사 얘기부터 짚어가며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러면 참고할만한 풍수지식들을 여기에 옮기며 앎의 폭을 넓혀갈까한다.

 

▷현군형산(치마를 걸어놓은 것같은 형상)

: 저런 모양의 산이 보이는 마을에는 엄처시하거나 마을이 떠들썩한 음행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 관악산이 화성이기때문에 걸핏하면 궁중에 화재가 나곤해서 광화문에다 바다에서 산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를 세우고 남대문 현판을 세워 걸었다.

 

▷이곳 금릉고을은 위쪽 고을보다 겨울에는 더 춥고 여름에는 더 더운 지방이다. 모두 바람때문이지.

소백산맥에 부딪친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황학산 & 도리사

황학산은 직지사를 품고 있는 산이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 뜻의 절이름이 생겨난 유래는 이곳에서 멀지않은 선산 해평의 도리사와 관계가 있다...아도가 해평 송곡동 냉산 중턱에 도리사를 짓고 절 서남쪽 망대에 서서 금릉 대항의 황학산 중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곳에 좋은 절터가 있다고 말했대서 연유한 이름인것이다. 직지사 역시 아도가 세운 것이었다.
...도리사는 힘을 상징하는 사찰이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견훤을 맞서싸운 곳이기도 한 이 사찰은 조선조 초엽때까지만해도 스님들이 수백명이나 되는 대사찰이었다. 그러나 풍수를 무시했기에 지금은 쇠락할대로 쇠락해버렸다.
...조선민족의 뿌리를 흔들어놓겠다는 왜놈들의 공략은 치밀했다. 풍수탄압을 함과 동시에 사찰에 주석하고 있는 고승들의 법력을 약화시키려고 갖은 꾀를 다 짜냈던 것이다.

 

※나의 코멘트: 도리사에 계셨던 고승 동타스님을 파계시키려던 왜놈의 계책은 무너지고 천하명기 유란이 감복하여 동탄스님의 천서를 가지고 운문사로 가는 얘기는 참으로 인상적인 내용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고 도리사에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는 쇠락해버린 도리사의 시발탄인지라 씁쓸한 기분과 함께 왜놈에 대한 분개를 갖게 만들었다.

 

도리사는 큰 배가 물에 떠있는 형국이었다. 이땅에서 불교가 공인되기도전에 아도화상이 이곳에 들어와 포교하게 된 까닭도 지세의 힘을 빌려 포교하고자함이었다. 이 일대의 산들은 그 맥이 힘찬 것으로 유명하다.
태백산맥의 기운찬 맥과 직접 닿아있기때문이었다. 영남인물의 반은 이 선산에서 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다 산세의 영향을 받기때문이었다. 도리사의 스님들도 산세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힘이 장사들이어서 인근 마을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조 초기때까지도 도리사에는 수백명의 스님들이 있었다. 밤낮 불도에 정진하는 부류와 인근마을에 내려가 작폐를 일삼는 무리가 한 도량에서 지냈던 것이다.

왈패에 속한 도철이란 땡중이 마을에서 행패를 일삼았다. 그러나 방장스님은 그런 그를 감싸고 돌았고 주지스님은 결국 그를 제거하기위해 묶어두고 대나무침으로 찔러댔다. 이를 안 방장스님이 진노하여 달려왔지만 때는 늦었다. 그가 이 절의 울타리였는데 이제 누가 이 절을 지킬건가하는 말만 남기고 입적하였다.
세월이 흘러 주지스님이 방장스님이 되었고 객승 하나가 절앞의 나쁜 기를 없애기위해 돌산을 쌓으라했고 그리하여 쌓게 되었다. 그 뒤로 쇠락하기 시작했는데 그 객승은 왜국에서 온 잡술사로 인물나는걸 방비하려고 한 인물. 융성하던 절이 점점 기울더니 급기야는 스님 하나없는 폐사가 되기에 이르렀고 임진왜란이 터졌다. 그나마 소수의 스님들이 머물게 된것은 동타스님의 노고에 힘입어서였다.

 

▷도리사는 뱃터였다. 뱃머리에 무거운 돌산을 만들어놨으니 배가 가라앉아버린거나 다름없었다.

 

태극

오른손 아래, 왼손 위로 맞잡아 포갬 ☞ 태극
태극이 양손에 담겨져있네. 곧 우주가 담겨져있네.
수벽치기란 말그대로 손바닥을 부딪쳐서 몸을 강건하게 하는 운동이라네.
반드시 자신의 몸끼리 부딪쳐야지 다른 사람과 부딪쳐서는 안되네.
타인과의 경쟁심을 발동하지않은채 내적인 수력에 치중하기 위함이네.
몸의 중심선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는 순간 소리와 빛이 발생한다네.
이 소리와 빛이 바로 활기라네.
이 활기로 능히 못할게 없다네.

 

▷이제부터는 돌을 나르는게 곧 참선이었다.

화두는 돌이었고 참선수행은 그 돌을 나르는 일이었다.

 

※나의 코멘트: 또 한가지 풍수에 있어서 알수있었던 사실은 여자라고 명당에 묻히지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로, 친정집 선산에 묻히고도 발복은 원수나 다름없던 시집으로 간다.

 

 

▷ 동래 정씨는 조선의 3대문벌 가운데 하나였다.

전주 이씨와 안동 김씨 못지않은 집안으로 이곳 동래에 그 시조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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