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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신해철 & 윤상 <노땐쓰> 결성|그룹 넥스트의 2집 part 2 발매 & 학창시절 이야기

by monozuki 202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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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직업
가수
소속
넥스트
사이트
-
 
윤상
직업
작곡가, 음악감독
소속
원피스, 오드아이앤씨
사이트
팬카페, 공식사이트

 

마왕 신해철의 10주기를 맞아

지난달부터 그를 추억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오늘은 1995년도 그룹 넥스트의

2집 part 2 발매 관련 기사와

넥스트 멤버인 김영석, 이수용,

김세황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담아봤다.

더불어 1996년 신해철이

절친이었던 윤상과 결성한

그룹 <노땐쓰> 관련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스튜디오 녹음만

1700여 시간

흑인  · 백인음악과

한국가락의 '멋진 만남'

 

그룹 넥스트
그룹 넥스트

 

넥스트(NEXT)의 새 앨범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그 기다림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 진척도는 85%가량으로 한두 곡의 보컬 녹음이 남은 상태. 빠르면 오는 8월 중순, 늦어도 9월 초에는 넥스트(NEXT)의 3집 앨범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2집의 Part 2다. 2집 Part 1이 나온 지 딱 1년 2개월 만이다.
"조그만 문제점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하나하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파고들었죠. 어떤 사람은 그런 우리더러 그래미상 받으려느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지요."
정말 물건 하나를 만들려고 작정을 했다. 스튜디오 작업량만 총 500 프로(스튜디오 녹음 시간의 단위. 1 프로는 3시간 반) 를 넘었다. 앨범 한 장을 녹음하는 데 보통 30 ~ 50 프로 정도가 소요된다.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앨범 러닝타임은 총 70 분이 넘는다. 엔지니어만 15명 이상이 동원되었다.
그중에는 영국에서 건너온 세계적 엔지니어도 있다. 세계 최상급 엔지니어를 구하기 위해 넥스트(NEXT)는 인터네트에 메일을 띄웠고 영국의 프로듀서스사에서 답신이 왔다. 먼저 데모 테이프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것. 마음에 들면 싸게 작업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비싸질 것이고 아주 아니다 싶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일을 맡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믹 글래스업이란 최고의 엔지니어가 신해철의 녹음 작업을 맡기로 했다.
1년이 넘도록 계속된 작업은 그를 지치게도 했다. 특히 팀워크가 와해되고 멤버가 빠져나갈 때는 엄청난 절망에 휩싸이기도 했다. 팀이 와해된 후 3 ~ 4 개월 동안은 아예 작업에 손댈 수조 차 없었다. 새 멤버가 들어오고 급속도로 작업이 진척되었다. 새로운 멤버들과의 팀워크도 탄탄하다. 기타의 김세황과 드럼의 이수용 외 베이스에 김영석을 새로 영입했다. Part 1 에서는 라인업이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인간적인 교감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라이브를 가지며 연주 때의 팀워크도 다졌다.
"우리끼리 생각해도 이 정도면 최고의 멤버라고 자부합니다. 더 이상 멤버 교체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멤버 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딥 퍼플이나 비틀즈도 멤버 교체가 있었고 멤버 교체를 통해 그룹의 변신이나 새로운 시도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해철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NEXT의 작업 과정을 보면 그 같은 얘기는 어이없는 소문에 불과하다. 곡을 만드는 일부터 모든 작업은 공동으로 진행된다. 멤버 중 누구든 괜찮은 모티브가 있으면 발제를 하고 배구공을 주고받듯 꼭을 주고받으며 끝없이 다듬어가는 과정이 계속된다. 느린 곡이 빠른 곡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후렴이 붙기도 하고 곡의 길이가 늘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곡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 곡이 네 사람의 마음에 들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린다.
3집의 콘셉트는 음악적으로는 흑,백, 황의 조화에 있다. 평키, 랩으로 대별되는 흑인음악, 헤비메탈, 하드록 등의 백인 음악에다 한국적인 사운드를 가미시킨 것. 록 밴드와 사물놀이의 협연,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국악의 창, 스캣송 등을 가미한 형식, 평키 록의 리드 보컬을 국악인이 맡는 등의 새로운 시도들을 한다. 정신적인 컨셉트는 'Destruction of The Shell'. 자신과 외부의 교통을 막는 편견에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첫 곡도 <Gate of The World>로 정했다.
" 최근 제 노래의 가사들이 너무 어둡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일부에서는 혹시 사탄주의 아니냐는 시선도 있구요. 하지만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흰색 물감을 쓰는 건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강렬한 검은색이 오히려 흰색을 돋보이게 할 수 있거든요."
이들의 주 숙소는 신해철의 집이다. 작업에 모든 정열을 쏟아붓고 나면 남는 건 공허. 책을 읽고 비디오를 보고 글을 쓰면서 그 정신의 공백을 메워나간다. 그렇게 채워진 것들은 다시 음악적 영감으로 확대하여 재생산된다.
"Part 1 때에는 멤버의 라인업이 불안정해 공연이 힘들었어요. 이번엔 가을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콘서트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NEXT가 일본 최고의 그룹 'The Childern'과 조인트 콘서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신빙성 있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 제의는 'The Childern' 뿐만이 아니에요. 수많은 제의들 중 하나죠. 아직 구체화된 내용은 없어요. 다만 중요한 건 점점 좋은 조건의 제의가 들어온다는 사실이죠."
최근 일본의 유력음악 잡지에 2집이 소개되며 호평받은 적이 있다. 평점으로 별을 다는 난이 있는데 NEXT의 2집은 별 3개를 받았다. 일본에서도 수준급의 앨범 등급이다. 

■ 글 · 이신형 / 사진 · 전호성

 

 

 

 

 

 


그룹 '넥스트(N.EX.T)' - 나의 고등학교 시절

제자를 위해 자식까지 버린···아, 게슈타포여

그룹 넥스트
그룹 넥스트

 

'월드' 앨범을 내고 이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그룹 ' 넥스트'. 이들은 지난 9월 30일 앨범 발표 후 첫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그런데 이들의 공연장소는 뜻밖에도 학교강당 바로 신해철의 모교이자 기타리스트 김세황 아버지의 출신고인 보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첫 무대를 가졌던 것이다. 89년의 전통에 빛나는 이 학교의 ' 음악축제'에 게스트로 초대된 ' 넥스트'는 나이 든 동문들과 그 가족들, 옛 은사들 그리고 재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신곡 ' 코메리칸 블루스' ' 머니' ' 힘겨운 연인들을 위하여' 등과 1 · 2 집의 곡들을 메들리로 선보였다. 그 어디보다도 보수적인 학교라는 장소에서 자신들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시종일관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공연을 이끌어 가는 모습은 아직도 이들의 방송불허를 고집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국의 시대감각을 다시 한번 의심케 만드는 장면이기도 했다. 모처럼 이색적인 장소에서 공연하는 이들은 모두들 예전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담을 털어놓았고 불 꺼진 고등학교 교실들을 일부러 둘러보기도 했다. 이 머리 긴 로커들의 철없던 시절 이야기들을 하나씩 모아 보았다.

 

신해철(리더 & 보컬리스트)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은 3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게슈타포' 선생님이다. 오늘 한번 뵐 수 있으려나하고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제자가 온다는데 어딜 가신 거야? 그 선생님 때문에 내가 고3 시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우선 가장 부끄럽고 눈물 났던 일. 그 두발자유화 시절 우리 반 전원은 머리를 박박 깎아야 했다. 남들 보기 창피해서 결국 딴짓 못하고 바로 학교로 갔으니 선생님의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한 셈이랄까.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나는 일류대인 S대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성적이 나왔다. ' 음 나는 이제 됐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부고 뭐고 다 팽개치고 미친 듯이 기타를 뜯어대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학력고사 두 달을 남겨 놓고 선생님이 우리 어머님을 불렀다.
"이 성적으로는 전기대는 물론 후기대도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훌쩍이는 어머님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난 '내가 꼭 대학을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이 흔들리는 나의 맘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은 사람이 바로 게슈타포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어느 날 방과 후 날 불렀다. 그리고 눈가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자식이 없어서 너희 모두를 내 자식같이 생각하며 가르쳐 왔단다."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나의 마음은 약해졌고 두 달 동안 책에 코를 박고 공부한 결과 근근이 대학에 들어갔다. 결국 이런 선생님의 채찍질과 헌신 덕분에 우리 반은 전원이 대학에 합격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선생님이 자식이 없다고 말했던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나? 하지만 나라고 질 수는 없지. 선생님이 아직까지 풀지 못한 미스터리. 학력고사 33일 전 전교에서 소문난 모범반의 학생 모두가 3 · 3 주를 마시느라고 새벽 4시까지 길거리를 헤매다가 집에 기어서 들어가고 다음날 등교도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던 바로 그 사건. 히히 주동자가 바로 저였다구요.

 

 

그룹 넥스트
그룹 넥스트

 

 

김영석(베이시스트)

다른 멤버들은 하나같이 남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나는 음악을 하는 애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얌전하고 차분한 학생이었다. 세황이 같은 경우는 겉으로는 얌전해 보여도 속으로는 뜨거운 광기가 펄펄 끓고 있는데 난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얌전하다. 너무 강조하는 건가.
고등학교 때도 나는 음악을 하는 것 외에는 말썽 한 번 피운 적이 없다. 그때 우리 학교 출신 연예인 중에 는 유영석, 손무현이 있는데 무현이는 내 한 해 후배로 학교에서 같이 기타를 쳤다. 내가 처음 음반을 냈던 '하얀 그림자'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그름으로 우린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축제에 가서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장손에 장남인지라 부모님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음악활동을 반대했는데 내가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더욱 기겁을 하셨다. 나는 정말로 얌전하고 차분한 아이였지만 결국 연극영화과에도 들어가고 음악을 계속하는 걸 보면 고집 하나로 학창 시절을 버틴 (?) 듯하다.


이수용(드러머)

내가 음악을 처음 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네 집 벽장이 온통 레코드판으로 차 있는 것 아닌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도 그 친구를 따라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음악학원을 다니려고 찾아갔다. 신청자들을 앞에 놓고 강사 선생님들이 시연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때 드럼을 치는 강사 한 분이 너무나 멋있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마음을 바꾸어 드럼을 지원해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학원에서의 음악 공부와 학교 공부를 적당히 병행했지만, 고3 때부터는 악이 바로 나의 길'이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때부터 교과서는 다 학교 사물함에 놓아두고 빈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가방 안에는 딱 두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바로 도시락과 드럼 스틱이었다. 도시락이 비게 되면 스틱이 도시락에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대학에 진학할 시기가 오자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공부와 음악을 '병행하겠다'는 약속은 대부분 헛된 울림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난 끝까지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록(Rock)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결핍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집안 문제든 자신의 문제든 주위에 산적한 문제들로 해서 외로움 ·· 슬픔과 같은 아픈 감정이 깊이 쌓여 있는데 그런 감정들의 분출구를 바로 록이라는 음악에서 찾는다. 나 역시 힘들 때 음악을 하면 늘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난 음악을 계속해야 했고 지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서 좋겠다"고.


김세황(기타리스트)

미국 위싱턴에는 처칠 국민학교가 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국민학교로 위싱턴에 주재하는 각국의 외교관들과 고위관료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바로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네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나는 여기를 거쳐 쿠퍼 중학교를 다녔다. 쿠퍼 중학교 역시 선진적이고도 자유로운 방식의 교육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중 3때 귀국해 한국의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나는 적잖은 혼란에 빠져야 했다. 나름대로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학생부'라는 조직까지 따로 두고 학생과 선생님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든 탓이었다.
적응이 잘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변명이겠지만 난 좀 거친 성격으로 변해 갔다.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싸움질을 하다가 그만 제적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학교로 옮겼는데 몇 달 안 있어서 그곳에서도 또 싸움을 해서 제적을 당했다. 이 얘길 들으면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 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란다. 지금은 워낙 순하고 명랑해 보이기 때문이라나. 그렇게 되자 다른 학교에서도 날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딱 한 학교가 받아 주었는데 거긴 정말로 선생님들이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말썽을 피우면 체벌이 엄청나기 때문에 아예 입을 떼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기타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김정희 씨)가 클래식 기타를 치셨기 때문에 기억할 수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배웠지만 정말 재미가 나서 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때 국산 기타 줄 하나에 1천원 했는데 내 용돈도 하루에 1천원이었다. 난 거의 매일 내 용돈을 기타줄 사는 데 다 써야만 했다(후배 기타 리스트 여러분 이런 건 좀 배워 주세요~). 그런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의 절반이 집에서 농사를 짓는 '옥이 이모'의 무대였다. 서울에서 기타를 그렇게 쳤다면 괜히 '음악을 합네' 하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녔겠지만 그 동네 친구들에게 혹 기타 연주를 들려주면 " 야! 너 그럼 '호랑나비' 한번 쳐 봐라"는 얘기를 듣기 일쑤였다.

■ 취재 / 김정미 기자 사진 / 정규현 (프리랜서)

 

 

 

 

 

 


음악 색깔 뚜렷한

재주꾼들의 첫 '연합전선'

"뭔가 보여주겠다"

 

신해철, 윤상
신해철, 윤상

 

신해철, 윤상
신해철, 윤상

얼핏 보기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명의 뮤지션이 하나로 뭉쳤다. 카리스마 짙은 눈매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신해철(28)과 내성적이면서 지적인 분위기의 윤상(28)이 올 10월에 색다른 공동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한다. 록 그룹 '넥스트'의 리더인 신해철과 전자 음악을 추구하는 윤상이 의기투합한 것은 '두 사람의 동질감을 확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들은 10대들의 우상도 아니요, 현란한 댄스 음악으로 대중을 열광시키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유지하면서 가수로, 그리고 프로듀서로 역량을 넓혀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윤상은 "해철이와는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시작했고, 음악적으로도 완벽주의자여서 마음에 듭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음악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과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신해철도 "한때는 우리도 스타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기의 위치를 잡은 상태여서 ' 무언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윤상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은, 그래서 ' 귀중한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라고 프로젝트 앨범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신해철과 윤상이 절친해진 것은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상의 작업실에서 만난 둘은 처음 상대방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윤상의 표현을 빌리면, '저 녀석 웬일로 여기 왔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해철이 <재즈카페> 데모 테이프를 틀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우연히 음악을 듣게 된 윤상이 즉석에서 술병을 들고 와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했다. 그 후 동료 선후배 가수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도 유독 두 사람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서로에게 음악에 대한 충고를 해준다거나 프로듀싱에 대한 노하우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들은 "인기 가수였지만 경계 의식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편했다"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신해철과 윤상의 이번 프로젝트 앨범은 '제대로 된 테크노 음악'으로 꾸며진다. 이들이 테크노 음악을 선택한 것은 요즘 음악이 너무 획일화돼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신해철과 윤상이 각자 곡을 만들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음악을 보완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요즘 가요는 말초적이고 극단적인 상업주의 음악입니다. 테크노 음악을 사칭한 '조립 음악' 들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같은 신시사이저를 쓰더라도 음 하나하나 깎고 다듬는 음악을 만들 겁니다." ( 신해철 )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나라 문화는 짬뽕입니다. 다시 말해 정리가 안돼 있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지를 고민하고 새로운 음악 문화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 윤상 )
프로젝트 앨범이 성공할 것인가에 이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성공하면 본전'이고, ' 안되면 망신'이라고 말할 뿐이다. 신해철은 "결과보다는 방법론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테크노 음악을 했다고 남들처럼 무대에서 춤을 출 수도 없고, 다만 우리가 보기에 쑥스럽지 않을 정도라면 만족합니다. 우리가 ' 뭔가 한번 보여주겠다'는 뜻이죠"라고 말했다.
신해철과 윤상은 서로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편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친구여서 좋은 말을 해주는 것 자체가 가식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우정은 고백하지 않은 정열'이라는 명언이 잘 어울릴 듯했다.

글 황태훈 사진 이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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