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10주기를 추모하며]
2024년 10월 27일, 오늘은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 곁에 남아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게 해 준다. 오늘은 마왕 신해철을 비롯 김영석이 다른 가수들의 음반작업에 참여한 이른바 <넥스트 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당시 어떤 가수들이 그의 음반프로듀싱을 받았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내키는 대로 모인 최강 '음악 팀워크'
넥스트 사단이 다른 가요계 사단들과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가수를 상품성 있게 키우는 데 주력하기보다 함께 하는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통해 가수들 스스로가 셀프 프로듀서로 설 수 있게끔 길을 틔워주고 안내한다는 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인 앨범 판매고와 인기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지만 나중에 스스로 독립해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인연 닿는 사람들끼리 내키는 대로 모였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요? 우리 성격요? 상당히 방만하고 느슨하죠. 아주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단체적이고, 사단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굳이 긴장하지도 않고 별로 신경도 안 써요." 신해철은 자신을 비롯한 넥스트의 멤버들과 그들이 함께 프로듀싱해서 키워낸 가수들이 '신해철 사단'이라고 불리기보다 '넥스트 사단'이라 불리기를 원한다. 넥스트 사단의 기본 멤버는 물론 넥스트에 소속된 멤버 전원, 신해철 김영석 이수용 김세황이다. 이들 외 현재 이 사단의 호적에 입적해 있는 가수들은 남성 3인조 록그룹 에메랄드 캐슬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 로커 리아, 여성 록 듀오 미스미스터를 비롯해 <왜 하늘은> 이란 노래로 가요 차트 수위를 지켰던 이지훈, 올 가을 첫 앨범을 낼 신인 가수 변재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변재원을 제외한 가수들은 모두 지난 한 해 음반 프로듀서로 두각을 나타냈던 넥스트의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신해철의 후방 지원 하에 발 벗고 뛰어서 건져낸 재목들이다. 넥스트의 자회사 격인 '빅뱅'에 소속돼 있지 않고 별도의 매니지먼트 회사에 속해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사단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김영석이 그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또 무엇보다 그들 음악의 원류가 넥스트로부터 왔기 때문에 넥스트 사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이렇게 따지면 리더인 신해철이 1, 2집까지 프로듀싱해 주었던 전람회도 넥스트 사단에 포함될 만하다.
가요계에서 넥스트 사단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의욕적으로 준비 중인 '비밀 병기'에 있다. 이미 드러나게 활동 중인 멤버들 외 넥스트의 자체 기획사인 빅뱅에서 대문 꼭 꼭 여며 닫고 훈련 중인 가수들이 그들이다. 말 그대로 엄청난 폭발력과 잠재력을 내재한 빅뱅의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올 7월로 설립 10개월째 되는 빅뱅은 음반 기획과 매니지먼트, 캐릭터 사업을 비롯한 넥스트 자체의 모든 일을 감당하게 될 기획사로 가수 발굴과 양성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신해철이 사장으로 있는 빅뱅은 두 개의 독립적인 레이블이 독자적인 사업을 펼쳐가고 있는데 그 행보가 비밀스럽기 짝이 없다. "장르 구애 없이 실력 있는 가수를 키워 낼 빅뱅이란 레이블 파트에서는 현재 거의 본토 리듬 앤 블루스를 구사하는 변재원 이란 신인 가수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노래를 너무 잘해 아예 제가 목을 걸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매달리고 있죠. 또 다른 파트는 '사이렌'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밴드만을 위한 음악 제작을 전담합니다.
벌써 많은 부분이 진행된 상태인데 빠르면 올 가을, 겨울 사이에 선을 보이게 될 겁니다. 팬들이 듣기에 낯선 신인 밴드도 있지만 우리나라 록 밴드계에서 '한다'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아직은 사정상 명단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넥스트 사단이 다른 가요계 사단들과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에서 찾을 수 있다. 가수를 상품성 있게 키우는 데 주력하기보다 함께 하는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통해 가수들 스스로가 셀프 프로듀서로 설 수 있게끔 길을 틔워주고 안내한다는 점이 바로 포인트.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인 앨범 판매고와 인기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지만 나중에 스스로 독립해서 음악을 할 수 있게끔 하자는데 목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신해철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신인 밴드를 키우면서 동시에 프로듀서의 자질이 있나 보고 앨범 작업을 통해서도 나중에 독립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로 요약된다. 넥스트 사단의 이 같은 발상을 들여다보면 가요계 변방에 가까운 록 음악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제대로 매니지먼트 지원도 받지 못하고 돈 안 되는 음악이라고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록 진영을 위한 애정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넥스트 능가하고 국내 록계 이끌 '비밀병기' 개발에도 구슬땀
넥스트의 무사가 우리나라 록 진영의 무사를 뜻할 순 없죠. 록계 전체에서 진영을 확보하지 못하면 록 필드 자체가 침체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넥스트가 계층적으로 록을 전과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기보다 제 인기도나 지명도, 그리고 최상의 연주 수준을 가진 멤버들이 시류와 상황을 잘 탔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바꿔 말하면 현재 이 라인업의 넥스트는 록이 아니라 펑크나 댄스 · 뮤직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란 말입니다. 넥스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넥스트의 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넥스트이기 때문에 듣는 것이기 때문에 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록계에 별로 기여를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빅뱅은 할 일이 많다. 넥스트를 능가하고 또 우리나라 록계를 키워갈 후배. 로커들과 록밴드를 일으키는데 나름의 포석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실제로 빅뱅과 넥스트 사단의 도약에 고무돼 새로 앨범 출반을 계약하는 록 밴드들의 프러포즈가 많아진 것으로 일단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한 해 각기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던 넥스트 멤버들 중 단연 눈에 핀 사람은 베이스를 맡고 있던 김영석의 음반 프로듀서로서의 약진이다. 그는 에메랄드 캐슬과 리아. 미스미스터의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그 외에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프로듀싱해 주었다. 넥스트 사단의 일원으로 그가 발굴한 가수는 리아가 아주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리아는 넥스트 사단이 만든 스타 중 에도 캐릭터와 스타일, 코디와 각본을 미리 만들어 둔 상태에서 오디션을 통해 찾은 가수. 예를 들면 '체구는 작고 노래는 엄청나게 파워풀하게 하고 그러면서 외모는 그저 그렇고(?)' 란 콘셉트에 딱 맞아떨어진 가수였다. 그렇게 뽑은 리아를 넥스트 멤버들이 모여 음악적 스타일을 다듬어 갔다. 신해철은 '리아의 경우 음악적으로도 평가를 받았고 리아라는 개인의 캐릭터도 좋았고 무엇보다 노래를 잘한 데다 개성과 노래가 상업성과 음악성의 딱 중간에 걸리는 포인트를 갖춘 재목감이었다고 평한다.
"겉으로는 제가 완전 프로듀싱한 걸로 나타났지만 실상은 넥스트 모두의 작품이죠. 신해철 씨는 참견 안 하는 척하면서 이것저것 간섭하지 않는 것 없이 꼼꼼하게 챙겨요. 반주는 거의 넥스트 멤버들이 했고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죠." 김영석은 넥스트 사단의 구심점인 황금의 라인업 멤버들을 은근히 추켜세운다. 다른 가요계 사단들과 마찬가지로 넥스트 사단의 시야도 이미 세계를 향해 있다. 넥스트의 지장(智將) 답게 신해철이 세우는 사단의 해외 진출 전략도 다분히 분석적이고 예리하다.
여러 형태가 있지만 넥스트의 세계화는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동일한 곡으로 다국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것. 현재 계약 직전에 있는 건들도 있고 프러포즈도 왕성하다. "일본에선 새삼스레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넥스트'의 자리가 견고해져 있어요. 라이선스 음반을 정식 발매하지 않고 소량 수출만으로도 넥스트 팬들이 형성돼 있거든요.
특히 언더그라운드에서 레코드 컬렉터에 가까운 마니아들 중에서 넥스트 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어떤 음반 매장에서는 넥스트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내용을 따로 안내해서 붙여 놓은 곳도 있어요. 일본 시장에서 넥스트의 입지를 넓힌다면 이제 오버그라운드 시장에서의 프러포즈가 되겠지요."
넥스트 사단은 김영석의 표현처럼 개성이 강한 리더십 아래 개성이 강한 또 다른 리더들이 모여서 군사를 거느린 다분히 '군대' 같으면서 동시에 팀워크란 이름 아래 개인적인 음악 추구의 절대 자유가 보장되는 독특한 집단으로 가요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이 프로듀서의 이름에 올라가도 그 안에 두리뭉실 모든 멤버들의 에너지가 결집돼 있고 신해철의 말대로 '내키는 대로, 인연 닿는 대로 모였음'에도 음악적 파워는 평생지기 파트너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 김기연(자유기고가)
인터뷰 · 신해철
"록밴드 넥스트는 이미 완성됐다"
다른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신해철도 음악을 일이자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지난 한 해를 '놀았다' 고도 하고 '일했다' 고도 하는 그의 이야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겨진다. 마치 가족을 떠나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그는 한껏 채워져 넥스트로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었는데 7월 막바지에 만난 신해철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97년 추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넥스트 멤버들 모두 지난 한 해 각자 솔로 활동을 열심히 하고 다시 뭉쳤는데 이 휴지기가 어떤 음악적 성과로 나타났는지 알고 싶어요.
개인적인 기량이 많이 늘었어요. 덕분에 예전 전력으로는 구사하지 못했던 전술도 구사해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예를 들면 스테이지 위에서 컴퓨터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 대표적인데 그전까지는 밴드와 컴퓨터를 맞물려서 사운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과정이 복잡했거든요. 원래 우리 앨범은 다중녹음을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컴퓨터, 백코러스 인원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우리들이 직접 연주도 하고 코러스도 넣어요.
신해철 씨를 비롯한 넥스트 멤버들이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궁금한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MBC 라디오의 <음악도시> DJ와 케이블 TV m.net의 <사이버 뮤직 스페이스>의 VJ를 하면서 영화 <정글 스토리>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 윤상 씨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앨범 <No Dance>를 발표했어요. 제 경우 음악이 일이고 휴식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음악 속에 잘 살았어요. 베이시스트인 김영석 씨는 작년 한 해 에메랄드 캐슬, 미스미스터, 리아 등을 키워낸 음반 프로듀서로 두각을 나타냈고 김세황 씨는 세션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날렸죠. 가요를 듣다 기타가 좀 심하게(?) 나온다 싶으면 그 친구가 다 한 거라고 보면 돼요. 드러머인 이수용 씨 역시 작년에 드럼 참 무지하게 치고 다녔어요. 각자 자기 영역을 개발하고 구축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올 상반기에 무척 바쁘셨지요?
연초에 싱글 앨범 <Here I Stand For You>를 팬 서비스 차원에서 내놨었고 그 앨범 발표 후 전국 순회 콘서트를 다녀왔어요. 지난 4월에는 서울에서 히트곡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편곡해 발표한 '언플러그드 콘서트'도 가졌고 바로 얼마 전에 라이브 앨범을 출시했어요. 라이브 앨범 <R.U ready?>의 반응은 어때요? 출시된 지 이틀 됐는데 <R.U ready?>가 이전 라이브 앨범 판매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호조를 보이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이브 앨범 기록을 저희가 가지고 있는데 그 수치가 약 15만 장 정도예요. 국내 음반 시장에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라이브 시장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좋은 결과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 하면 신해철 씨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와 같은 '황금의 라인업'이 구축된 상황에서 록밴드로서 넥스트의 위상은 어떻게 정립해갈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넥스트로 불려지는 것은 이미 완성됐어요. 실제로 저희 앨범을 구매하는 계층은 '신해철과 넥스트' 라기보다 '넥스트'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팬들은 '신해철과 넥스트'라는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해요. 앨범이 1백만 장 2백만 장 팔려도 '신해철과 그 백밴드'라는 인식으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고 있는 록밴드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작업을 인정해 줘서 5만 장을 파는 것, 그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넥스트에 비중을 두는 거죠.
넥스트의 음악이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 걸까요?
대중성과 음악성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간혹 저희들을 일컬어 언더그라운드냐 오버그라운드냐 하는 말들도 있는데 그것 역시 대립 관계는 아니죠.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는 순환 관계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음악성과 상업성도 마찬가지예요. 이 둘은 같이 가는 경우도 있고 따로따로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서도 흑백논리로 자로 재듯 말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제 입장이죠.
신해철 씨 개인과 넥스트의 미래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는지.
지금 하는 일도 힘들어서 다음 일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돼 있겠죠. 특별한 모델은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나 한 번도 없었던 팀이 되고 싶지 누구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올 하반기에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별다른 앨범 PR 활동은 없어요. 가을쯤 케이블 TV 만화채널 투니버스가 26억 원을 들여 자체 제작하는 만화 <영혼기병 라젠카>의 메인 주제가 및 삽입곡을 담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출시될 예정이고 빅뱅에서 관심을 가지고 프로듀싱하고 있는 신인 변재원 씨의 첫 앨범이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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